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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Mar 08. 2024

벚꽃 본 날, 고등어 된장 조림

추천곡: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월요일은 맑고, 그로부터 지금까지는 춥거나, 흐리거나, 축축한 날이 이어졌습니다. 늘 정확하지는 않아도, 날씨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월요일에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방에서 10분 거리에 벚꽃이 피었다 지고 있는 줄도 몰랐을 겁니다.


여전히 앙상한 나무가 가득했던 겨울의 공원 한가운데, 분홍빛 섬이 구름처럼 떠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나들이객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 섬에 거주한 것 마냥 평일 한낮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고요. 재택 근무일,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뛰어나온 저는 사진 몇 장만 찍다 돌아갔지만, 그 풍경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창의력이 좋지 않아 매년 비슷비슷한 구도로 벚꽃을 찍지만, 매번 혼자 속절없이 마음을 뺏기고 말아요.


지독히도 아름답고 괴로운 봄. 언제 봄이 이만치 왔을까요. 그런데 이미 벚나무 잎이 씩씩하게 돋아난 걸 보니, 벌써 또 저만치 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인연은 여러분께 무엇을 남기나요. 저는 그들의 한 말을 기억합니다. 당장의 환심을 사기 위한 미사여구 말고요, 그 사람이 깊게 품고 있는 순수한 추억, 혹은 본질적인 철학과 맞닿은 말이요. 물론 그 정도 깊이의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인연이 끊긴 사람이 더 많겠지만요.


이맘때가 되면, 저와 도쿄 어딘가에서 함께 벚꽃길을 걸었던, 친구 이상의 마음을 나누었으나 기어코 연인은 되지 못했던, 한 사람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꽃만 순수히 만발한 벚나무가 좋다고 했어요. 푸릇푸릇한 잎이 돋아나면, 자기 안에서 벚꽃은 끝난 것이라고. 흰쌀밥을 먹고 싶었던 어린 시절, 엄마가 강요하던 완두콩밥 같아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고.


벚꽃을 보고 완두콩밥을 떠올리는 발상이 신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 사람을 알았던 짧은 시절보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잎이 돋아난 벚꽃을 보면 어김없이 그의 안부를 혼자 묻곤 합니다. 물론, 저는 완두콩밥을 좋아해서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요.



참, 지금 저물고 있는 벚꽃은 가장 일찍 개화한다고 알려진 분홍빛 ‘카와즈사쿠라(河津桜)’예요. 순백에 가까운 ‘소메이요시노(ソメイヨシノ)’는 3월 20일쯤 만개한다고 하니, 혹시 그맘때 도쿄에 오신다면 안심하셔도 좋아요.


그동안 가능하면 일기 주제와 연관성 있는 요리, 관련된 음악을 찾으려 했는데, 오늘은 완두콩밥이나 벚꽃 노래 말고, 그냥 제 마음 가는 대로 추천해 볼게요.


금주의 혼밥은 제가 애정하는 일본 가정식 중 하나인 ‘사바노미소니(鯖の味噌煮)‘ 혹은 고등어 된장 조림입니다. 여기에 주말에 만든 밑반찬과 있는 재료로 대충 끓인 파계란국을 곁들였어요.


재료: 고등어 반 마리, 물 1/2컵, 미림 2T, 간장 1T, 생강 1t, 미소된장 1.5T, 대파 약간

1. 장식용 대파는 길게 채 썰어 찬 물에 담근다.
2. 팬에 고등어를 올리고 물, 미림, 간장, 생강을 섞어 끓인다. 한 번 끓은 후에는 중 약불로 졸인다.
3. 양념이 졸여질 때까지, 고등어를 뒤집거나 양념을 끼얹어 가며 골고루 익힌다.
4. 3에 1을 올리면 완성.

(저는 반조리된 고등어를 사용했지만, 생물 고등어는 한 번 데쳐서 조리하는 편이 좋다고 합니다.)



식사를 하면서는 고 유재하 가수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만 꼽으라면, 음… 어렵지만, 요즘은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가장 와닿네요.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이미 채워진 계절은 보내주고, 아직 비어 있는 한 해의 여백을 나답게 그려나가기를 바라요. 그럼, 다음 주에 또 편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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