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평양면옥> 정결한 마음으로.
계속 고백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더 말하자면 ‘의정부파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필동면옥>도 <을지면옥>도 모두 좋아하는 나에겐 꿈이 한 가지 있었다. ‘의정부파 평양냉면’의 성지인 <의정부 평양면옥>을 가는 것. 늘 바라고 바라왔는데 운전면허도 없는 내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도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도착할 수 있는 의정부까지 간다는 건, 아주 큰 결심과 도전을 필요로 했다. 지도어플을 열어 집에서 <의정부 평양면옥>까지의 거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수차례 결심과 좌절을 반복하며 <의정부 평양면옥>은 점점 멀어져갔다. 평양냉면 애호가의 간절한 소망은 <의정부 평양면옥>을 가는 거라며 언젠간 꼭 갈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드디어 그 소망함의 온도가 100도씨에 가깝게 되어 이내 끓고 말았다. 평양냉면을 좋아한 뒤 4년만의 일이었다. 간절한 소망치고는 너무 늦은감이 있었지만 한번 끓기 시작한 마음은 뚝배기에 담긴 찌개처럼 식을줄을 몰랐다. 결심이 굳건해지니 기나긴 거리도 고난의 여정이 아닌 꿈에 한발짝 다가가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꿈에 그리던 그 날, 아침부터 일어나 말끔한 정신과 정결한 몸을 위해 성직자의 마음으로 샤워를 했다. 봄이 완연한 날이었으나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낮 기온에도 가진 옷들 중 그나마 멀끔한 니트를 입고 순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 가는 이 길은 고난의 길이 아니오. 오직 <의정부 평양면옥>을 향한 소망의 길이오.
제아무리 두근거리는 여정일지라도 물리적으로 먼 거리는 맞았다. 두 세 정거장 가면 다시 지도를 봤다. 얼마나 더 가야 의정부에 도달하는지 순간마다 확인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볼 때마다 지도 속 예상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제대로는 가고 있다는 뜻이니 다행이었다. 가까워 질 때마다 상상만 줄곳 해왔던 <의정부 평양면옥>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매우 감개무량해졌다. 노원에서부터는 친구를 만나 함께 여정을 떠났다. 정거장마다 기대돼서 죽겠다는 나에게 정신차리라고 해주는 이성적인 친구와 함께하다보니 펄펄 끓던 물이 살짝 고요해졌다. 그러다가도 "여기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거든!! 여기 정말 나한테는 성지거든!!"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친구는 그럴 때마다 "제발 조용히 좀 해. 창피하니깐!"이라고 언성을 낮췄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외딴 의정부에 도착해 버스를 탔다. 많던 건물들이 사라지고 벌판이 더 많아지는 거리를 버스가 쌩쌩 달렸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흙먼지까지 일으켜며. 어플에서 알려준 정류장에 내렸다. 늘상 냉면을 먹으러 갈 때면 호들갑스러워지지만 이날은 스스로 생각해도 유독 호들갑스러운 날이었다. 버스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니 형광초록색 조끼를 입은 주차요원 아저씨 등에 빨간 글씨의 '평양면옥'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안그래도 호들갑을 떨어대던 내가, 친구의 팔꿈치를 잡으면 멈칫했다. "대박! 왔어" 먼 길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내가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이곳과 가까운 노원에 살고있는 친구가 부러울지경이었다. 드디어 마주한 <의정부 평양면옥>을 바다속 용궁이라도 들어온 사람마냥 큰 눈으로 여기저기 훑어보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물냉면 두 그릇과 만두 한 접시를 시키고는 다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친구에게 말했다. "야아~ 여기 정말 나한텐 성지야~" 친구는 진심으로 이런 나를 창피해하며 "성지라는 말 좀 하지마! 진짜 창피해!"라고 답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왜 의정부가 평양냉면의 성지가 되었을까. 의정부는 부대찌개로 유명한 곳 아닌가. 의외였다. 아무래도 이름이 평양냉면이니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맛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근데 또 그렇게 따지자면 서울에 맛있는 냉면집이 몰려 있을 게 아니라 파주나 강화도, 철원이나 연천등에 진정한 평양냉면 고수의 집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가 메밀이 유명하기도 하고. 그렇게 따지자면 또 어느 시절이나 인구가 밀집된 지역은 도시였을테니 서울에 냉면집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었겠거니 싶기도 했다. 그러다 <필동면옥>을 가게됐고, 그렇게 의정부가 왜 성지가 되었는지 알게 됐다.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의 전신. <의정부 평양면옥>은 평양에서 음식점을 하시던 김경필할머니가 1.4후퇴 때 월남한 뒤 69년에 경기도 연천에서 개업한 후, 87년에 의정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연천에서 계속 장사를 하셨다면 의정부가 아니라 연천에 가는 걸 꿈꾸며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연천보다는 의정부가 낫지). 이후에 두 딸이 각각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으로 대를 이어 가고 있고, 그렇게 <의정부 평양면옥>은 성지가 됐다. 지금은 <강남 평양면옥(구 본가 평양면옥)>에 셋째 딸까지 냉면을 만들고 있으니 온 가족이 냉면으로 뭉쳐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할머니가 강남에서 2-3년간 막내 딸에게 비법을 전수해 주었고 현재 <의정부 평양면옥>은 장남부부가 맡아 운영 중이다.
맑은 육수 위로 송송 썰린 파와 붉은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고, 하얀 빛을 띄는 얇은 면이 그 사이로 야무지게 뭉쳐있다. 겉으로 보나 흔들어 보나 이곳이 '의정부 파'임을 드러낸다. 사랑하는 <필동면옥>, <을지면옥>과 어떤 점이 다를까싶어 미각세포를 깨웠다. 기대감 때문인지 더욱 맛있었다. 기대가 꺾이지 않는 맛. 이것이야 말로 엄마의 맛 (실제로 김경필 할머니가 만드신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을지면옥>은 간간함이 있고 파가 많아 맑은 계란 국의 느낌이었다면, <필동면옥>은 그보다 슴슴하고 깔끔한 육수의 맛이 있어 고춧가루의 매콤함이 살포시 더 느껴진다. 그렇다면 <의정부 평양면옥>은? 적당한 파의 맛에 간간함과 슴슴한 어디즈매 있는 육수의 간, 그리고 마지막에 여운을 주는 고춧가루의 매운 향까지 놓치지 않고 목젓을 건드리며 넘어갔다. 돼지와 소고기 둘 다 사용하는 육수라 고명으로 두 가지 고기가 함께 나오는데 육수와 면을 더 먹고 싶은 마음에 고기고명은 친구에게 넘겼다. 같이 주문한 만두는 주먹처럼 생긴 이북식 만두로 두툼한 피에 꾸밈없는 모습으로 나왔다. 냉면도 만두도 한 입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걸 좋아해 큰 만두를 반으로 나눠 입 안 가득 욱여넣었다. 촉촉하고 보드라웠다. 김경필 할머니 말고 나의 김복녀 할머니도 며느리인 김은희 엄마와 함께 한 번씩 큰 대야에 고기 없이 숙주와 두부를 많이 넣는 이북식 만두를 손수 빚었다. 어릴 때는 두툼한 피로 만든 심심한 만두가 별 맛이 없었지만 지금은 밀가루를 그대로 쪄 먹는 듯한 두툼하고 담백한 만두가 입에 잘 맞다(얇은 피 만두도 참 좋아하는데...). 우물우물 씹을수록 느껴지는 담백함. 만두를 다 먹고 나면 육수로 목을 씻고 면치기로 깔끔한 메밀향을 덮는다. 한 입씩 크게 먹다보니 만두도 면도 육수도 모두 한 입만 남았다. 일단 만두부터 먹고 입 속을 깔끔히 정비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면 한 젓가락을 씹은 뒤, 육수 한 입을 최대한 목젖에 가까이해서 넘겼다. 냉면 맛을 가득 품고 마무리하길 좋아하는 나의 전략이다. 정결한 마음으로 시작된 여정의 끝엔 평양냉면으로 정결케 된 내가 있다.
역시 행복하고 깔끔한 한 그릇이었다. 간혹 만원이 넘는 냉면을 사먹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현생에 이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만나 단숨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또 생각하고 생각해도 좋다. 이따금씩 목사님들이 나에게 무엇 때문에 살고 있냐는 질문을 하신다. 듣고 싶은 정답이 있으셨겠고 그 정답이 무엇인지 30년을 넘게 교회생활을 해 온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평양냉면 때문에 살아요"라고 답한다. 장난처럼 이야기 하지만 그 안에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목사님은 모르실거다.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있음을,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단순한 행복에도 감사할 수 있음을. 날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소중하단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