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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주 Oct 18. 2023

쓰지 않는 일기

술 냄새 섞인 말로 써내려가는 일기

 우리는 술자리에서 서로의 일상을 많이 공유한다. 메신저나 전화로 공유하는 것과 다르다.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 나누는 수다와도 다르다. 취기가 올라 평소에 못했던 진심 어린 말들을 나누고, 응어리졌던 말들을 꺼내기 때문이다. 취하지 않은 일상에서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술자리에 가면 또 새로운 대화를 이어가는 상황이 그렇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술자리를 가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술자리의 대부분에서도 결국 일상과 생각을 나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일기를 썼다. 내 생각을 기록하고 쓰면서 되돌아봤다. 물론 일기는 지금도 쓴다. 하지만 형태는 달라졌다. 술에 취해 나눈 이야기들 중 내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에 대해 핸드폰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메모들을 다른 곳에 옮겨 적거나 되새겨본다. 보통의 일상은 너무나도 무뎌졌기에 더 솔직하고 깊은 나를 보고 싶어서였다.


 주변 사람들도 사회생활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이들이 많아지다 보니 가볍게 만나도 깊게 이야기하는 상황들도 많아졌다.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진지한 이야기들을 섞는다. 그리고 술에서 깬 다음날의 안부에서도 그 진지함은 이어져간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들을 알아간다. 그리고 나도 나의 이야기를 잊을 때쯤 누군가 다시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너 요즘은 예전처럼 안 힘들어?”


 그때 불현듯 깨닫는다. 한 달 전 술자리에서의 나는 힘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연이어 알아차린다. 그 상황이 나아졌다면 무엇으로 극복했는지 되짚어본다. 일기를 쓸 때도 그랬다. 내가 쓴 일기들이 잊혀질 때쯤 다시 읽어보며 회상했다.

 나에겐 요즘의 술자리가 그렇다. 메모와 같은 기록을 하는 걸 까먹었을 때 술자리 상대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저번에 그 얘기 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이전 술자리에서 취해서 했던 말을 까먹었더라도 다시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준다. 그렇게 술은 나에게 쓰지 않는 일기가 되었다. 말로 써내려가고, 술자리를 함께 하는 동반자와 나누는 회상 일기 같은 것으로.

 꾸준히 펜을 잡기 어렵다면 꾸준히 가지는 술자리에서라도 진실된 이야기로 일기를 써내려가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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