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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May 27. 2020

프롤로그

좋은 리더는 비슷하지만 나쁜 리더는 저마다의 이유로 나쁘다.

이 글은 내 경험과 조사를 바탕으로 나쁜 리더를 유형별로 정리한 묶음집이다. 나는 11년 넘는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리더가 된 적도 있고 구성원이 된 적도 있다. 팀 리더를 두 번 역임했고, 두 번 모두 팀 구성원을 손수 채용하며 팀을 빌드업했다. 팀 구성원인 경우에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리딩하는 PM 역할을 맡았다. 나는 에이전시에 있을 때도 있었고 인하우스에서 근무한 적도 있었다.


이 글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당신에게 나쁜 리더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당신은 이미 리더일 수도 있고 앞으로 리더가 될 사람일 수도 있고 리더와 일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의 삶에는 리더가 있다. 당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쁜 리더를 필터링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두는 건 유의미할 것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나쁜 리더의 기준을 명확히 표현한 글은 나에게도 확실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가야 할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하게 될 실수를 이 글을 통해 예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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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불확실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를 고안해냈다. 집단과 희생양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몇십만 년 전부터 집단을 이루고 사냥과 채집을 함께하며 부족한 것을 서로 교환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가족, 학교, 회사, 동호회, 국가 등 인간은 집단을 떠나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제대로 된 협력을 방해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기 혼자 살자고 서로를 공격하면 그 집단은 무너진다. 특히 위기 상황이 더 그렇다. 인간은 점점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만장일치 하에 단 한 명만을 집중 공격하기로 합의하게 되는데, 이 사람을 보통 희생양이라 부른다.


희생양이 없으면 집단은 유지될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인류는 집단의 갈등과 폭력을 한 희생양에게 전가시켜 평화와 결속을 얻었으며 이게 반복된다고 보았다.


희생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게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죄일에 '숫염소'를 잡으면 모든 죄를 속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님'은 인류의 원죄를 안고 십자가에서 희생당했다. 중세 시대에는 합리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온갖 의혹을 '마녀' 하나에게 뒤집어 씌워서 문제를 해결한 마녀사냥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역모로 몰아 길거리에 죽은 사람의 목을 내걸었다. 나치는 1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유대인'에게 있다고 선전하며 그들을 학살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은 '정치 깡패'들에게 현수막을 들려 거리를 행진하게 하여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켰다.


1961년 5월 21일 정치깡페들의 거리 행진


이렇게 인간은 다수의 소생을 위한 소수의 희생을 반복하며 생존했다. 놀랍게도 희생양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리더로 재탄생한다. 생각해보면 희생양과 리더는 어감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점이 많다.


모든 리더는 기본적으로 욕을 먹는다. 잘해도 욕을 먹고 못해도 욕을 먹으며, 심지어 하지도 않은 일로 욕을 먹기도 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리더를 뒷담화하여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결속력을 확인한다. 만약 그 리더가 없어지면 다른 희생양(리더)를 찾는다.


바로 이 점이 리더와 희생양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희생양은 집단의 피상적인 문제를 떠안고 말 그대로 희생되는 대상이지만, 리더에게는 집단의 문제를 근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리더(leader)는 문자 그대로 조직을, 사람을 이끄는 사람이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장 서서 이끌어야 한다. 리더의 앞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며 사람들은 리더의 등만 보고 따라간다. 리더는 뒤통수에 꽂히는 구성원들의 욕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앞장선다. 구성원은 자신을 이끄는 이 특이한 희생양을 점점 특별하게 여기게 된다.


그렇기에 무리의 선두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리더는 위대하다. 서번트니, 팔로워니, 그런 말은 이끌지 못하는 사람의 변명일 뿐이다. 독재, 위임, 지시, 비전, 디렉션, 코칭, 선도, 주도 등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불확실한 환경을 앞장 서서 돌파하는 리더의 방식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장 서서 불확실한 환경을 개척한 리더, 다시 말해 집단을 이끄는 희생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끌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고 위험을 무릅쓰지도 않고 욕 먹기도 싫어하는 리더는 자격이 없다. 리더의 본질은 조직의 생존과 성과를 위한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왜 조직에 리더가 필요한지 본질적으로 고민하지 않은 리더는 오히려 조직에 위협이 되는 나쁜 리더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좋은 리더는 모두 비슷하지만 나쁜 리더는 저마다의 이유로 나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하를 희생양으로 삼는 리더

회사 뒤에 숨는 리더

마이크로 매니징만 하는 리더

심복 정치를 하는 리더

브라더십을 악용하는 리더

전략이 없는 리더

비전이 없는 리더

관상을 보는 리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리더

위임을 못하는 리더


지금부터 보게 될 이 나쁜 리더의 유형 10가지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자신이 특별한 희생양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집단을 이끄는 책임의 무게를 외면하는 나쁜 리더가 줄어들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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