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부서 기피부서 편한부서 그리고 좋은부서
공직생활 중 최고의 영예와 보람은 뭐니 뭐니 해도 승진이다. 승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승진을 위해 인맥을 쌓는다. 승진을 위해 요직을 찾고, 승진을 위해 영혼 없는 웃음도 판다. 승진만 빨리할 수 있다면 못 할 짓이 없다. 그래서 공직에는 선호부서가 있고, 기피부서가 있다. 요직이 있고, 한직이 있다.
30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필자의 경험치로 보면 직원 개인에게 걸맞는 좋은 부서, 좋은 업무는 각자 따로 있다. 숨겨진 보석과 같은 진짜 좋은 부서, 좋은 업무는 어느 부서, 어떤 업무일까.
인사철만 되면... 직원들은 소위 힘 있는 부서, 승진 빨리하는 부서, 편한 부서를 찾아다니느라 혈안이 된다. 혹시 당신도 행정지원과나 기획예산과 혹은 서무주임 자리, 주무국 주무과의 주무팀에 들어가려고 호시탐탐 몸부림을 치지는 않는지. 물론 공직생활을 하면서 소위 요직에서 근무할 필요도 있겠지만 너무 승진에 목숨 걸면 놓치거나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소위 행정지원과나 기획예산과, 감사실 같은 선호부서를 치고 들어가면 자리 쟁탈전에서 이겼다는 성취감? 내심 완장 찬 기분이 들고, 한편으로 조직의 주류와 어울린다는 뿌듯함도 있다. 물론 근평을 잘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선점했다는 안도감이 제일 클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허세이고 깡통이라는 사실을 아는 직원은 거의 없다.
필자가 현직에서 공직생활과 바깥세상을 넘나들며 겪고 느낀 결론은... 소위 힘 있는 부서, 선호부서, 요직에서 익힌 것들은 공직 밖 사회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 자신도 이런 사실을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피부서를 드려다 보자. 기피부서는 업무량이 많고, 진짜 일이 힘들다. 일이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민원인과 접촉이 많다는 얘기이다. 요즘 어렵게 들어온 공직을 박차고 나가는 직원의 첫 번째 이유가 악성 민원 때문이라고 한다. 복지정책과나 주차관리과가 대표적일 텐데 사실 직원들이 더 기피하고 힘 들어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참고 견뎌도 고생한 보람 없이 승진은 소위 선호부서나 요직에 있는 인간들한테 밀린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본 필자로서는 소위 기피부서를 기피는 후배들의 입장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소위 편한부서는 업무의 성격상 민원이 거의 없는 부서이다. 업무는 크게 시류를 타지 않아서 법 개정이 거의 없고, 일 처리도 수십 년간 축적된 매뉴얼 대로 하면 큰 무리가 없다. 그래서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낮다. 그만큼 남에게 간섭받을 일도 없고, 야근할 일도 적다.
반면 편한부서는 잠시 몸이 편할지는 몰라도 얻을 것이 별로 없다. 기관에서 어느 부서가 편한 부서일까? 그건 그 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그냥 상상에 맡기겠다.
그렇다면 어느 부서가 좋은부서, 좋은업무 일까? 좋은업무란 조직 밖 실생활에서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업무이다. 예를 들면 재건축 업무나 토지보상 업무, 자동차등록 업무가 그렇다. 실제로 업무를 한번 익히면 현직에서든 퇴직을 하든... 아무때나 적용과 자문이 가능하다. 이런 업무를 직접 담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알면 얼마나 잘 알겠는가? 누군가 의도치 않게 곤란한 상황에 닥쳤을 때 매끄럽게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큰 자산이 된다.
게다가 좋은업무는 업무 노하우가 축적될수록 전문가로서 사회적으로 큰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열려있는 업무이다. 지방공무원의 경우 사회복지, 지적, 세무, 건축, 토목 업무가 대표적이다. 노무 업무를 일정 기간 담당하면, 노무사 자격시험의 일부를 면제해준다. 공동주택 관리업무를 일정 기간 하면,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 실무경력을 인정받는다. 이외에도 여러 부서에 숨어있는 진주는 무척 많다.
특정 업무가 자신의 성격에 맞거나 관심이 많다면, 그 업무가 좋은 업무인 것이다. 그 업무가 실생활에 도움이 되거나 학업과 연관시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면, 남들이 뭐라 해도 당신에게는 더없이 좋은업무인 것이다. 이런 업무는 대부분 기피부서에 있거나 한직으로 치부되니... 자원 신청을 하면 발령이 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엄습 속에 인공지능 로봇 공무원은 인간 공무원의 자리를 빠르게 잠식해 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시기를 2045년~2050년 즈음으로 예상하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 말고, 당신의 인생을 가꾸고 채우는데 진짜 가치 있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는지? 실무를 하면서 장기적인 플랜B도 동시에 쌓을 수 있는 직장이 공직이다. 남들이 기피하고 힘들다고 하는 자리에서 칭찬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당신은 썩은 고기만을 찾아 헤매는 산기슭의 하이에나인가?
아니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인가?
경수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