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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Jul 31. 2023

퐁토슈 가의 사람들

프롤로그

내가 이곳에 온 건 칠 년 전 봄이었어요. 리옹에서 이 년을 살다 힘들게 결정을 내려 파리에 온 참이었죠. 

예술의 나라 프랑스니까,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많을 테고 영어만 구사해도 한국에서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허망한 꿈은 리옹에서 사는 동안 진작 산산조각이 났어요. 


영국에 갔다 오면 좀 더 유능한 큐레이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글라스고에 갔고, 하필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버렸으며, 한국에 돌아와 좋은 직장 제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이 돌아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프랑스의 구직 상황에 대해 이해도가 전혀 없는 채로 "부딪히면 다 돼."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이 년을 버티다 남편은 번아웃을, 나는 우울증을 안고 간당간당한 이혼의 위기를 겨우 넘기며 파리로 상경했어요. 프랑스에서 살려면 프랑스어를 잘해야만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애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힘들게 파리에 온 만큼 내가 예전에 뭘 했던가 하는 문제에 더는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나를 먹여살리고, 여행 다니고, 프랑스의 복잡한 행정문제를 다 해결해주었던 그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가리지 않고 온갖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식당 아르바이트가 많았고, 한국 마트의 점원이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물건을 날라야 하는 육체적으로 고된 일도 있었어요.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한 가게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게는 이전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나가 본 적이 있던 길에 있었어요. 특별한 볼거리라곤 없던 평범한 길이었지요.


처음 만난 가게의 사장님은 아주 긴 머리에, 키도 크고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이었어요. 가게에서 손님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드디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사장님이 입을 열자 약간의 긴장감이 사르르 가라앉았어요. 다소 세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아이 같은 천진함이 목소리와 말투에서 묻어나 안심이 되었습니다.

내게 많은 걸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저것만으로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요. 대신 나는 사장님의 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죠. 프랑스에 와서 상대방의 말을 이해 못 해 미소만 짓던 연습을 많이 했던 나는 이미 상당히 '굿 리스너'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게에서 일을 하기로 했어요.


한국의 옷을 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요. 그것도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 초입에 아직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던 작은 길, 퐁토슈 가에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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