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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Aug 01. 2023

다니엘 아저씨

퐁토슈 가의 터줏대감과 그의 개

다니엘 아저씨는 내가 일하는 가게의 같은 건물에 사는 분이에요. 아저씨는 아주 지저분한 요크셔테리어 개 한 마리를 분신처럼 언제나 데리고 다니셨어요. 개를 너무도 좋아했던 나는 입에서 썩은 내가 풍기고 털이 엉켜 엉망진창인 상태의 그 개를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하루에도 여러 번 개와 산책하고, 분명 무척 아끼는 것 같은데 개 상태가 왜 저럴까 궁금했던 거죠.


개 이름은 이네스. 내가 이네스를 예뻐하자 다니엘 아저씨는 가게에 매일 드나들기 시작했어요. 가게 화장실에는 다 찌그러진 철제 그릇이 있었는데 이네스의 전용 물그릇이었죠. 이네스가 오면 시원한 수돗물을 가득 받아 주었어요.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신 이네스가 얼굴을 세차게 흔들면 입가 털에서 튕겨져 나간 물방울들이 가게 마룻바닥에 진한 원을 그리곤 했지요. 아저씨는 특유의 과장된 손짓과 하이톤의 목소리로 "이네스는 여기 물을 제일 좋아한다니까."라고 말하여, 수돗물을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어 이네스의 철제 그릇을 씻어놓기까지 하는 정성을 보이게 만드셨죠.


아빠와 나이가 동갑인 아저씨는 이네스가 가족의 전부인 게이였는데, 이 동네가 게이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어요. 언젠가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나요. 파리의 마레지구를 소개하면서 게이들이 많은 곳이라고 하여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었죠. 인생이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이어서 내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소에서 일을 하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게다가 옷가게에서 말이에요!


말도 통하지 않는데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어요. 사실 시간이 남아도는 아저씨에게 중요한 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지, 듣는 게 아니었을지도요. 그러니 내가 딱 제격이 아니었겠어요. 다니엘 아저씨의 일방적인 수다를 들으면서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프랑스어 욕을 익혀갑니다. 아저씨는 온갖 나쁜 말, 특히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던 속어들을 내게 가르쳐 주었지요. 집으로 돌아와 아저씨에게 배운 말들을 무작정 뱉어냈을 때의 남편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나쁜 말이니 밖에서 절대 쓰지 말라는 남편에게 나는 약 올리듯 반복해 말했지요. 어린아이 단계의 프랑스어를 구사하니 정신 연령도 그렇게 따라가나 봅니다.


나는 마치 이제 막 말을 시작하는 아이처럼 프랑스어를, 그리고 무엇보다 욕을 온몸으로 흡수하기 시작했어요. 그 욕이 얼마나 천박하고 나쁜 것인지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프랑스인이 아닌 이상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기도 어려웠죠. 이건 마치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이 어눌하게 "개새끼, 개새끼" 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성질이 고약한 다니엘 아저씨는 모든 면에서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었어요. 내게 집에서 구운 크레이프나 비스킷 등을 예쁜 접시에 담아 갖다 주는 친절을 베풀었던 건 순전히 내가 아저씨의 개, 이네스를 예뻐했기 때문이었죠. 퐁토슈 가에서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이 오래 살고 계시는 아저씨 덕분에 나는 퐁토슈 가의 거의 모든 개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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