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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Jul 31. 2023

생각해 보니 나는 프랑스어를 못해요

C'est la France!

프랑스에 와서 불어의 기초는 학교에서 익혔지만 불어로 일을 한다는 건 다른 문제였어요. 그건 한겨울에도 겨드랑이에서, 가슴골에서, 또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렇게 나는 매일 땀을 흘렸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 하나 없이 오롯이 나 혼자 그 가게를 맡게 되었거든요. 사장님은 개인적인 일로 한국에서 몇 달 머물러야만 했기 때문에 가게의 많은 일들이 내 책임이 된 거예요.

나는 옷가게에서 주로 사용하는 불어 단어와 문장들을 익혀야만 했고, 주 고객이 나이가 좀 있으신 프랑스 *마담(madame)들이라 날이 갈수록 주눅이 들었습니다. 친절하고 따뜻한 태도를 지닌 마담들도 있었지만 자기 할 말만 하고 오만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마담도 있었어요. 그런 마담들은 간혹 내가 불어 단어를 몰라 영어를 섞어 쓸 때면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일으키곤 했지요.


  "C'est la France!" 여긴 프랑스라고!


아 겨드랑이와 가슴골과 등에서 한 줄기 땀이 주르륵 흐릅니다.

아무리 무례한 손님이라도 늘 웃으며 당신은 갑, 나는 을입니다의 태도로 일을 했어요. 마담의 말대로 C'est la France! 이곳은 프랑스인데 말이에요. 무례한 사람에게 절절매지 않아도 되는 곳, 갑이 을의 무릎을 굽히지 않는 곳인데, 이 태도를 버리기까지 불어를 익히는 것만큼이나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루종일 긴장과 씨름하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육체적 노동보다 정신적 피로가 나를 더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죠. 그럼에도 나는 계속 가게에서 일을 했습니다. 식은땀 흘리는 날들은 여전했지만, 내가 그곳에 있을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거든요. 내가 아주 천천히 이 나라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 같은 거라고 할까요.


퐁토슈 가의 다른 가게 상인들이 내게 인사를 건넬 때, 그런데 그 인사가 너무도 이국적인 말 "Bonjour"봉주르 인 걸 새삼 깨달았을 때, 그 이국적이고도 낯선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프랑스 사람이 남편 말고도 있다는 작은 쾌감을 느낄 때, 그리하여 나를 이곳에 묶어두는 건 남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든 나만의 세계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미한 가능성을 퐁토슈 가에서 엿보았던 것입니다.





*마담(madame) : 아주머니,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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