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가 이곳에 온 건 칠 년 전 봄이었어요. 리옹에서 이 년을 살다 힘들게 결정을 내려 파리에 온 참이었죠.
이 년이라는 짧지도 그렇다고 아주 길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나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나를 부를 때를 제외하면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갈 곳이나 해야 할 일이 없는 공기 중에 붕 뜬 상태. 그 속에서 애매한 내 위치만큼이나 아리송한 마음을 갖고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갑자기 맞닥뜨린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곳, 전업주부라는 단어가 희귀하게 사용되는 곳,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나를 도무지 이해 못 하는 남편과 이웃들의 눈초리에 나는 점점 쪼그라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 했고, 큰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일을 두세 개씩 겹쳐하기도 했습니다. 바쁘고 싶으면 얼마든지 바쁠 수 있었고, 일을 벌일 수도 있었지요. 그러다 남편을 만나 진공의 시간에 떨어지게 된 겁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그래서 시간은 남아도는데 마음은 엄청나게 불편한, 이 년 동안의 시간.
나는 내 이름을 찾고 싶었어요.
나는 프랑스의 구직 상황에 대해 이해도가 전혀 없는 채로 "부딪히면 다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력서를 몇 군데 넣어 보았습니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니까,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많을 테고 영어만 구사해도 한국에서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순진무구한 꿈은 리옹에서 사는 동안 진작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영국에 갔다 오면 좀 더 유능한 큐레이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글라스고에 갔고, 하필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버렸으며, 한국에 돌아와 좋은 직장 제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이 돌아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영어가 다 무슨 소용인가요. 프랑스인들의 모국어 사랑은 아주 유별난데 말이에요. 게다가 국공립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공무원 신분으로서, 국적이 프랑스인 사람들만이 시험을 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상업 갤러리의 디렉터들은 내게 호감은 보였지만 일자리는 주지 않았어요. 단 몇 번의 거절에도 나는 심하게 좌절했습니다.
리옹에서의 시간은 내게 버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을, 남편은 번아웃을 안고 간당간당한 이혼의 위기를 겨우 넘기며 파리로 상경했어요. 프랑스에서 살려면 프랑스어를 잘해야만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애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힘들게 파리에 온 만큼 내가 예전에 뭘 했던가 하는 문제에 더는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나를 먹여 살리고, 여행 다니고, 프랑스의 복잡한 행정문제를 다 해결해 주었던 그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제 내가 스스로 살아가는 시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가리지 않고 온갖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주로 식당 아르바이트가 많았고, 한국 마트의 점원이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물건을 날라야 하는 육체적으로 고된 일도 있었어요.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한 가게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게는 이전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나가 본 적이 있던 길에 있었어요. 특별한 볼거리라곤 없던 평범한 길이었지요.
가게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손님이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옷을 구경하며 손님이 나가길 기다리는데, 이어 손님들이 더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재이 씨가 들어오니 손님이 더 많이 오네요."
처음 만난 가게의 사장님은 아주 긴 머리에, 키도 크고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이었어요. 가게에서 손님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드디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사장님이 입을 열자 약간의 긴장감이 사르르 가라앉았어요. 다소 세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아이 같은 천진함이 목소리와 말투에서 묻어나 안심이 되었습니다.
안으로 길게 뻗은 마치 동굴 같은 형태의 가게에는 빈티지한 가구와 말린 꽃, 그리고 식물들이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너무 시크하고 미니멀해서 직원들 마저 좋게 말해 쿨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세련된 가게들을 떠올리다 이곳을 보니 시적이라는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게, 주인의 취향과 고집이 엿보이는 곳.
사장님은 내게 많은 걸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저것만으로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요. 대신 나는 사장님의 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죠. 프랑스에 와서 상대방의 말을 이해 못 해 미소만 짓던 연습을 많이 했던 나는 이미 상당히 '굿 리스너'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게에서 일을 하기로 했어요.
한국의 옷을 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요. 그것도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 초입에 아직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던 작은 길, 퐁토슈 가에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