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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03. 2020

10년 영어공부 도대체 무엇?

오직 시험을 위한 시간들

아직도 기억나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계시다. 40대 후반 정도의 키 큰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항상 영어 책을 직접 읽어 주셨다. 교실에 앉아 있던 나와 친구들은 그 발음, 억양, 강세가 맞는지 틀린 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물론 내신 성적을 올리는 데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저 교과서의 지문과 기출 단어의 뜻을 외워서 시험지의 문제를 풀기만 하면 되었다. 듣기, 말하기, 쓰기는 1도 관련이 없었다. ‘언어가 다른 국어시간’이라고 이해하면 딱이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영어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굳이 횟수를 따져보면 10년을 그렇게 영어를 공부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그 엄청난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참 무색할 만큼 나는 영어를 ‘못’ 한다. 한국 영어 교육의 산증인이면서 동시에 그 문제의 중심에 내가 있다.


‘영어’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예전이나 요즘이나 그 화끈함은 여전하다.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것이 영어 교육 관련 광고다. 계속 자기들 영어 교육 서비스만 시작하면 아이패드를 주고 아이팟을 준다고 한다. 사실 그런 것은 필요 없고 영어만 잘하게 해 준다면 고객이 감사 선물을 줘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혹하는 물품으로 한 명이라도 더 꼬셔서 데려오려고 그 난리인 것을 보니 별로 결과에는 자신이 없어 보인다. 한 달, 두 달이면 영어가 끝나고 완성된다는 책이나 강의도 무척 많다. 실제로 그랬다는 후기도 참 많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학교에서 10년을 넘게 영어를 배운 나, 그리고 우리는 도대체 시간을 어디에다 말아먹은 것인가? 영어를 완성을 해도 100번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름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해왔던 나는 영어에 흥미가 없어 그랬는지 딱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만큼만 했다. 제대로 영어 자체를 공부했다기보다는 ‘영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시험공부’만 했다. 별다른 깨우침이 없었다면 다들 나와 같지 않았을까? 학문을 사랑하고 탐구하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우리 학창 시절에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수능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초등학교부터 달려가는 학생들에게 그런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제대로 영어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성문 문법책을 펴본 적도 없고 몇 형식이니, 품사니 그런 것은 아직도 잘 모른다. 딱 한번, 취업 직전 대학교 휴학 시절에 해외 현지에서 영어를 접했을 때 처음 공부를 시작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뉴질랜드에서 6개월 동안 지냈던 기간이다. 그때 공부한 것이 내 영어 공부의 기초이자 전부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영어가 재밌었다.


그 당시 느꼈던 한 가지 충격이 있다. 학창 시절에 배운 ‘현재 시제, 과거 시제’는 일상생활에서 사실 쓸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이야기 인가하면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가 평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들은 대부분 ‘근황 토크’다. 근황 토크는 당연히 ‘방금까지 뭔가 했거나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스토리는 대부분 모두 현재 완료(방금까지 했음) 또는 현재 완료 진행형(지금도 하고 있음)으로 표현된다. 단순하게 ‘한다, 했다’는 표현은 일상 대화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다. 내가 제대로 학창 시절에 공부하지 않아서겠지만 이런 실용적인 이야기는 정말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 당시 제대로 된 영어 교육, 해외 거주 경험이 없는 선생님들도 잘 몰라서였을 테다. 아니면 그저 복잡하게 알려줄 필요 없이 시험 문제 내기 쉬운 것들만 가르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처럼 우리는 학교에서 진짜 ‘영어’를 공부했다기보다는 ‘영어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왔다.


지금 호주에서 5~6살 아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다. 아들은 4년 반을 한국에서 지낸 토종 한국인으로 영어는 1도 모르고 이곳에 왔다. 우리나라였으면 하루 만에 모두 외우고 치워버렸을 것을 한 Term(10주) 동안, 때론 그 이상의 긴 기간 동안 아주 조금씩 조금씩 반복하며 다양한 형태로 익히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게 인터내셔널 학생(영어가 제2외국어)을 위한 것이 아니다. 네이티브 스피커(영어가 모국어)인 호주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한다. 그 작은 친구들이 이미 보통의 우리보다 훨씬 영어 듣기, 말하기를 잘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주 천천히 몸으로 생활 속에서 묻어나게 배우다 보니 그 속도는 느린 것 같아도 아주 깊숙하게 흡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한 ‘영어 시험공부’는 아주 빠르게 들어왔다가 그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곤 했었다.


지금의 한국 영어 교육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배웠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고 들었다. 여전히 사교육의 열풍이 ‘영어’가 중심인 것을 보면 공교육의 영어 교육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기사로 접한 웃픈 사연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 때 통역을 기가 막히게 맡았던 ‘샤론 최’가 다녔다는 강남 영어 학원에 문의가 폭발했었다고 한다. 이게 우리나라 영어 사교육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좋은 학원 비싼 학원 다니게 해서 영어를 잡아보자는 심리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이제는 10년이 아닌 그 이상을 영어를 공부하는데도 항상 그 목마름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영어(를 포함한 모든 외국어)를 지금의 공교육을 통해 완벽하게 배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고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한국인일 경우에는 그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낫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태생의 차이를 쉽게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정상적인 공교육과 대학을 나온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어만 들어도 벌벌 떨리고 꺼리게 되는 이 현상은 뭔가 좀 잘못되었다. 아예 평생 영어를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모를까. 모두가 ‘영어’, ‘영어’하면서도 모두가 ‘영어’를 두려워하는 상황은 뭔가 많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세대는 조금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본원적인 문제는 남아있다. 뭔가 공교육에서부터 확실히 다르게 가르치던가 아니면 아예 과감하게 영어를 공통 언어로 쓰던가 하는 식의 방법도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고통받을 바에야 널리 퍼트려서 그 강도를 줄이면 나아지는 게 아닐까? 이게 너무 많이 나간 생각이라면 아예 반대로 영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 '영어 사용 금지령'을 내리면 어떨까? 그러면 모두 영어를 포기하고 편하게 살게 될 수 있을까?


학창 시절 10년이 넘도록 함께했던 영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직도 영어가 많이 계속 두렵다. 영어를 접하고 공부하려고 할수록 줄어들긴커녕 그 오랜 시간의 부끄러워짐이 더욱 커지기만 한다. 이런 내가 어쩌다 이렇게 영어권에 살게 되어 모른척하고 있던 그 불편함을 자주 느낀다. 그럴 때마다 지나간 내 학창 시절이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푹푹 쉬게 된다. 그 마음을 담아 이렇게 찌글거려본다.






<Prologue>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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