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라고 해도 먹혀. 절대 충동구매하지 마!
나는 절대 동안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원래 노안이 그대로 쭈욱 간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유독 동안인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아무리 우기고 젊게 보인다고 믿고 싶어도 시간은 흐르고 늙는다. 미안하지만 결국 다 거기서 거기다.
이제는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나와 친구들. 그래도 모이면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인다며 뻐기는 녀석이 있다. 근데 허풍도 좀 어지간히 쳐야 하는 데 좀 심하다.
'pass for'는 무엇으로 통한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기가 20대로 통한다는 막말이다. 해도 해도 너무 했네.
술기운이 오르고 내기가 시작된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한 명이라도 20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보기로 했다. 결과는 뻔했다. 20대 소리는 구경도 못했다.
자신 있던 그 친구의 쥐구멍으로 숨어 들어가는 소리다. 그러니까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거 아니라니깐. 아까 그 사람들 이야기 들었지? 그게 현실이야.
술기운보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더 붉어진 친구. 타격이 좀 큰가 보다. 의기소침한 그 친구에게 한 마디 건넨다.
괴롭겠지만 참고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친구. 우린 이제 그렇게 젊지 않아.
어릴 때 쓰던 말과 커서 쓰는 말이 달라진다. 내가 성인이 된 후에 잘 쓰던 표현이 무언지 생각해 본다. 자주 쓰는 말을 영어로 익혀두면 기억에도 잘 남고 유용할 것 같았다. 내 기준의 성인은 결혼할 즈음부터였다. 그전에는 뭐 이런 망나니가 따로 없었다. 이제 좀 사람이 되어갔던 그때부터 난 무슨 말을 많이 했을까?
지금의 와이프, 파랑을 만나서 연애하면서 난 어떻게든 우리가 천생연분임을 입증하고 확인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맞는 부분, 공통점 등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사회생활을 서로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랑에게 우리 커플의 긍정적인 면을 주입시키기 위해 이런 말을 많이 전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릴 보면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하더라고!'
진짜 이런 말을 많이 들었었냐고? 실제로 1번 들으면 5번은 전했던 것 같다. 그러니 아주 거짓은 아니었다. 잡혀가려나?
그렇게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할 운명의 커플이 되어갔다. 거의 대부분 내 잘못으로 인해 이런저런 굴곡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잘 헤쳐 나왔다. 무언가 늘 내 생각대로 되어가길 바라는 내 성격 탓에 만족스러운 타이밍에 습관처럼 뱉는 말이 있는데. ‘아주 좋아! 모든 게 다 내 생각대로 되어가고 있어!’
조금 더 살아본 이제는 잘 안다. 사실 내 계획대로 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을 안심시키고 싶어서 자주 했던 말이고, 지금도 입에 달고 산다. 이렇게 말이라도 해서 기분이 안정된다면 자주 써먹어도 되지 않을까?
우리 집에서 무엇인가 사는 사람은 파랑이다. 꼭 필요한 것을 산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한 번씩 확인을 하고자 한다. 혹시나 해서 말이다. 절대 파랑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소비가 정말 합리적인지 고민해본다. 이 말은 직접 내뱉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어지간하면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고 한다. 속으로만 주로 스스로 되새기는 말이다.
결정 전에 한 번씩만 더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인지. 진짜 필요한 것을 사지만 가끔 내 눈치 보는 파랑을 보면 안타깝다. 필요한 것은 사자. 정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