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Jul 11. 2021

영어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세

그래 봤자 일상의 언어일 뿐

오늘도 귀를 쫑긋 세우고 다닌다. 혹시라도 못 알아들을까 봐. 오늘도 티브이의 볼륨을 높인다. 소리가 작아서 안 들리는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진실을 털어놓고 만다. 에둘러 표현하기보다는 문장을 뱉기 바빠서. 오늘도 돌아선 뒤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왜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했는지 한심해서. 이게 이곳에서 벌어지는 나의 듣고 말하는 생활이다. 청력에 문제가 있는지 매일 의심하고 누굴 만나도 진실 게임하듯 곧은 말들이 술술 나온다.


온몸으로 긴장하고 집중하며 살아가는 덕분에 마냥 웃지 못할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도저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물어볼 때마다 입으로 대답하기를 즉각 포기한다. 그러고는 내 전화기에 저장해 둔 내 전화번호를 직접 보여주곤 한다. 부정 의문문에 반대로 대답하며 만드는 오해는 일상이다. 내 마음이 '응, 그거 아니야'라서 'NO'라고 대답하면 언제나 거꾸로 전달된다. 이런 것은 약과다. 다음 슬픈 사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식당에서 카드로 계산하면 직원이 내게 꼭 묻는 말이 있다. 영수증 카피(COPY)를 원하냐고. 어느 날은 배가 불러서 고막이 부풀어 올랐는지 그게 커피(COFFEE)로 들렸다.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라서 놀라며 고맙다고 어서 달라고 했다. 내 손에 주어진 것은 뜨거운 테이크 아웃 커피잔이 아닌 따뜻하고 작은 영수증 조각이었다. 다른 가게에서는 멤버십을 가입하라고 했다. 혜택이 많으니 이메일 주소로 간단하게 바로 할 수 있다고. 이번엔 핸드폰 번호와 다르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자신 있게 말했다. 'sukjoonhong9670'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 '@'에서 막혔다. 잠시 고민하다가 당당하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꼴~뱅~이~'였다. 순간 골뱅이가 떠올라서 영어식으로 나름 굴리고 꼬아서 뱉은 단어였다. 자연스럽게 알아들으셔서 주차장으로 오는 순간까지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차에 올라타며 온몸이 달아올랐다. 와, 이건 정말 역대급이었다.


분량의 여유만 있다면 끊임없이 채울 수 있을 실수담이 넘친다. 영어의 문제인지 내 문제인지 모를 순간들이 틈을 주지 않고 찾아온다. 놀라운 일은 그러는 가운데 아주 멀리서 한국어가 조그맣게라도 들리면 기가 막히게 하나도 빠짐없이 알아듣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말을 잘하는 편도 아닌데 이런 신기한 체험을 자주 한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고 온몸의 신경을 집중해도 들리지 않던 말들이 귀에 쏙쏙 들어와 꽂힌다. 표현하는 것은 말해 뭐할까. 미리 문장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원하는 적절한 뉘앙스와 느낌을 풍기며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전형적인 코리언 네이티브 스피커임을 이럴 때마다 새삼 절감한다.


큰 욕심은 없다. 남이 하는 말의 의도를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유머라면 웃을 수 있고, 진짜 의견을 묻는 질문이 아닌지 여부를 알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도 덜도 말고 그대로 전하길 원한다. 듣는 이가 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생각해보면 이게 꼭 영어라서 생기는 불편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종종 자주 벌어진다. 내 말을 오해하고 남의 말을 곡해하고. 그럼 내 언어 능력을 탓해야 하는 걸까? 수능 언어능력 영역은 나쁘지 않았는데도? 다행히 그게 아니라면 원래 모든 언어라는 게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언어의 공통점이 이렇다면 이를 토대로 영어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는 없을까? 나에 대한 한심함을 걷어내고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좀 더 크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각에 여기까지 미치자 마치 굉장한 결론에 다다른 듯 머리가 맑아졌다.


어쩔  없는 영어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결국 영어도  다른 언어다. 언어란 무엇인가? 사람의 생각, 감정, 느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억지로 어렵게 익힐 수도 없지만 그렇게 배운다고 느는 것도 아니다. 원어민처럼 하고 싶은  자유자재로 하면서 영화 드라마 모두 팍팍 알아듣고 울고 웃기를 바라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어라는 것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세계의 것이 아님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같은 사람이 쓰는 다른 종류의 언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 편한 한국말처럼 일상에서 대화하고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사이에 뭔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고 이를 배우고 쓰려면 굉장한 장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가장  장애물이다. 영어도 '일상의 언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생활과  속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어차피 사람이라면 말하고 싶은 것은 똑같다. 바로  지점에서 다른 언어를 익혀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원래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을 영어로 뭐라고 할까?' 이 질문과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일상의 이야기를 영어로 즐길 수 있도록 썼다. 생활 에세이를 읽으면서 영어 표현도 덤으로 배울 수 있도록. 그런 친숙한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더 남을 것으로 믿으며. 그렇게 남은 다른 언어의 문장이 언젠가 찾아올 비슷한 일상에 떠오를 수 있도록. 가끔씩 자주 쓰는 말을 영어로 바꿔서 재미로 써볼 수 있으면 되겠다. 따로 벽을 세워두고 있다가 '영어 공부해야지!' 할 때만 만나는 친구가 아니면 좋겠다. 우리의 생활에 함께 녹아들어 구분이 없어지면 바랄 것이 없겠다. 영상 속의 자막을 읽어 내느라 바쁘다가도 스쳐 지나가듯이 익힌 표현이 귀에 꽂히는 그런 희열을 가끔 느끼면 족한다. 더 이상 겁먹지 말고 그냥 그런 또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곁에 두고 평생 친하게 지내길 바란다. 너무 잘하려고 빡빡하게 굴지 말고 편하게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수하면 어떻고 잘 못해도 무슨 상관일까?


우리는 원래 근본이 한국어다. 영어에 근본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의 근본 없는 영어를 응원한다.




계속 이어지는 근본 없는 영어 이야기






<Prologue>

<Interlud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