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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9. 2023

책을 기다리는 시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많이 기다렸지만, 또 그러고 있다. 성격이 급하다 못해 짧다. 안달복달 조바심 내기 선수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얻은 예상치 못한 부수입은 인내의 경험이다. 천성에 맞춰 날뛰었다면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을 테다. 내려놓고 내려놓다 보니 참을성이 길러졌다. 거절받을 용기만 있다면 책을 낼 수 있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다그치지 않을 끈기를 추가해야 할 모양이다. 아무리 궁금하고 조급해지고 걱정이 되어도 참아야 한다. 할 수 있는 걸 다했고, 상대가 기다려 달라고 했다면 그래야 한다. 여기서 재촉하며 의미 없는 확인을 요구하는 건 모양이 빠진다. 시간을 때우는 데는 추억팔이가 최고다.


도전의 시작은 소박했다. 현실을 고스란히 옮기던 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눌려있던 상상을 펼치려고 쓴 글이었다. 장르나 분야를 신경 쓰지 않았다. 쓸 때는 억눌리지 않으니 편했다. 다 쓰고 나니 애매했다. 거짓이니 수필이라 할 순 없었고, 소설이라 부르긴 짧았다.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모아둔 출판사 이름을 둘러보며 한참 헤맸다. 사실을 적은 게 아니었으니 소설이라 부르는 게 맞아 보였다. 입장을 정리한 채 소설을 출간하는 곳을 둘러보니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 으리으리한 신춘문예나 문학상으로만 소설가를 뽑고 있었고, 소설 투고도 이미 앞선 공모전을 통과해 등단을 이룬 자에게만 기회를 주고 있었다. 아니면 다른 각도에 있는 공상 과학이나 판타지 쪽이거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쓰고 싶은 글을 소설 형식을 빌려 썼을 뿐이다. 본격적이고 거대한 소설가의 세계는 범접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뜨려 두었다. 시선을 돌려 접근 가능한 영역을 둘러보았다. 분명 어딘가 내게 맞는 곳이 있을 거라 믿고.


무시무시한 과정 없이도 소설을 펴내는 곳이 드문드문 보였다. 장르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나 선호 없이 좋은 책을 만드는 곳도 눈에 띄었다. 일부러 내 원고에 맞춘 곳을 찾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포용의 폭을 마음껏 넓혔을지도 모르지만. 출간된 소설 같은 에세이나 에세이 같은 소설이 내가 쓴 글과 먼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같은 편이라 여겼다. 나름의 기준으로 물어볼 곳의 목록을 정리했다. 내 마음을 받아줄 거란 희망을 가득 품은 채. 그렇게 시작된 출판사에 말을 거는 여정은 기어코 절정을 맞이했다. 꾸며 쓴 이야기에 등장하는 긴장의 최고점 같이 숨을 몰아쉬다 턱 하고 막히는 순간이 찾아왔다. 안녕이란 말만 남기고 모두 떠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손을 건넸던 출판사마저 나를 버리려 고민하고 있었다. 첫인상에 끌렸지만 앞날을 함께하기엔 걸리는 점이 많다며. 잠시 생각해 볼 시간을 달라는, 결국 헤어질 게 뻔한 연인의 식상한 멘트를 날리곤 침묵했다. 날이 갈수록 엉켜가는 희망 회로의 복잡함을 참지 못하고 단호하게 묻고 말았다. 아니어도 좋으니 당장 답을 해달라고.


약속한 때를 한참 지나서 도착한 편지엔 의외의 대답이 적혀있었다. '작가님의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들어가는 일정에 맞춰서 진행하고 싶다고. 긴 시간 기다려 주어 고맙다며 계약하자고 했다. 한참 아래까지 파묻었던 기대가 움찔거렸다. 포기에 가까웠던 몸은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믿기 어려운 반전에 환호할 기운이 없어 주저앉았다. 팔자에 없던 허구를 쓰더니 톡톡히 위기를 지나 고비를 넘겼다. 가득했던 답답함과 막막함은 겸손과 감사로 둔갑했다. 바로 도장을 찍고 서명했다. 놀란 가슴을 미처 달래기도 전에 할 일이 청구되었다.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글, 추가 원고.


본문이 아닌 아우르는 글을 쓸 때면 참 곤란하다. 자신만 똑바로 서서 색깔을 내보이면 되는 게 아니라서 어렵다. 정해진 자리에서 글과 글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고유의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나와 남을 모두 담아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같은 주제로 묶은 글 덩어리 맨 앞에 서서 독자를 이끄는 글을 요청받았다. 외웠을 법도 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이미 썼던 지난 원고를 차분히 다시 읽었다. 각각의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묶어둔 기준이 알맞은지 살폈다. 마치 남이 쓴 글을 읽는 것 마냥 분석하고 요약했다. 정리가 끝난 뒤 비워 둔 세 곳의 도입부를 노려보았다. 어떤 글이 들어가야 읽는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책장을 넘기게 만들 수 있을까. 빈 종이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하얀 종이를 마주하면 설렌다. 다만 목적이 분명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걱정이 추가된다. 책에 넣을 글을 쓸 때 그렇다. 자유롭게 쓰면서 책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적는 글자 하나하나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쇄가 예정된 글쓰기는 어깨가 무겁다. 머리로는 우선 쓰고 고치자고 명령을 내리지만, 손가락이 쓰고 지우고 멀리서 다시 돌아와 고치는 걸 막을 재간이 없다. 새 글이 자신이 없어 지난 글로 돌아가 힌트를 얻겠다며 그 앞에 쭈그리고 앉으면 얻는 건 불안뿐이다. 정말 이걸로 책을 내겠다고 쓴 건가, 다른 글을 쓸 게 아니라 이것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을 보내는 날 집중시키는 건 마감뿐이다. 간결하지만 굵게 던지며 뒤따라올 충격을 암시하는 짧은 글 3개를 완성해 보냈다. 떠난 뒤엔 잠시도 붙잡지 않고 조금도 돌아보지 않는다. 쓰느라 겪은 고통이 클수록 더욱.


그 이후 계속 기다리고 있다. 지금의 기다림은 바로 이 기다림이다. 물론 끝까지 참지 못하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딱 한 번 물어봤었다. 답을 줄 때까지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듣고는 조용히 있다. 바닥과 천장을 오르내렸던 슬픔과 기쁨을 회상하며. 꺼내 쓸 추억이 동이 나면 딴생각이 찾아온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튄다. 확실히 담담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첫 번째 책 보다, 또다시 가능해 신기했던 두 번째 책 보다. 허황된 기대는 쏙 숨는다. 오히려 좋은 기회를 계속 가질 수 있어 안심한다. 덕분에 쓸 수 있는 동력을 얻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다가설 수 있으니. 다 잡는 마음도 잠시, 곧 걱정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책이 나오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 심지어 이번엔 출판 시기에 맞춰 한국에 있기까지 한데. 전보다 누가 더 알아주려나. 알아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걱정 다음은 의심으로. 그럼 혼자 만족하려고 쓴 건가. 앞으로도 나만의 성취만으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으려나. 정녕 받고 싶은 건 내가 아닌 타인의 인정인가. 꾸준히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던 기도는 거짓이었나. 난 도대체 왜 쓰는가.


삶이 굴러가면 다른 일이 많다. 쓰는 시간만 있지 않다. 쓰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쓴다. 하루의 일부분을 할애해 글자에 나를 담는다. 쓰는 동안 나를 알아간다. 어제 쓴 만큼, 오늘 쓴 만큼, 딱 그만큼만. 책을 만들면 기다리는 시간이 삶에 더해진다. 쓰는 나에 관해 고민하는 용도로 쓴다. 눈앞에 닥친 책이란 녀석에 온 정신이 팔리기 쉽다. 그럴듯해 보이는 사각형 물성엔 피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으니. 가까워져서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순간에 머물면 차라리 차가워진다. 내 손에 들어올 그것이 바라던 게 맞는지 겁이 난다. 책이 세상에 나오면 쓰는 나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금이 아니라면 갖기 어려운 상념들. 깊어질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결국엔 바라게 된다. 여행 전날과 크리스마스이브처럼 어쩌면 가장 행복한 지점에 서 있는 게 아닐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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