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Aug 27. 2023

알아서 걷지 못하는 아이

아빠, 저 사람은 뭐 하는 거야?

갓 나온 내 책을 찾아 커다란 서점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헤매고 있을 때였다. 광활한 공간에 작디작은 한 권의 책이 홀로 놓여있다는 쓸쓸함에 한창 마음이 쪼그라들고 있던 찰나. 저쪽 건너편에서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딜 봐도 작가로 보이는 사람이 얼핏 봐도 수십 명이 되는 청중 앞에서 양손에 책과 마이크를 각각 들고 서 있었다. 앉아서 바라보는 관객의 무릎에는 모두 같은 책이 놓인 채로. 조용한 책방에 울려 퍼진 그를 향한 밀도 있는 박수 소리가 어린 친구의 귀를 사로잡은 모양이었다. 감을 잡은 나는 부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담담한 투로 간략하게 설명했다. 북토크의 개념을 이해한 아들은 우려되는 추가 질문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아빠도 저렇게 하면 안 돼?"라고 물으면 얼굴이 벌게질 게 뻔했는데 다행이었다. 같은 자리에 계속 서 있다간 이어지는 환호성에 뒤를 잡혀 소년의 호기심이 커질까 봐 서둘러 멀어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서점에 이름 박힌 책을 만나러 와서 겪은 일이다.


책이 태어났다. 어렵게 낳아준 만큼 알아서 크길 바라지만 어림도 없다. 혼자 걸어 다니면서 환하게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도 척척하면 참 좋겠다만. 세상에 막 나온 신생아와 다름없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일일이 입혀주고 떠먹여 줘야 한다. 아기를 배 속에 품고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후기가 진실이 되는 순간. 오만가지 장밋빛 상상을 부풀리며 기대하던 그때가 벌써 그립다. 출간되자마자 재밌다는 소문이 나서 서평과 리뷰가 끊이지 않고, 인쇄소는 주말 밤낮없이 찍어내느라 불만을 집어 던지는 장면. 출생 신고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아도 부모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새 책의 존재는 나만 안다. 나 말고는 이름도 얼굴도 아는 이가 없는 자식을 끼고 다니며 알려야 한다. 초행도 아니고 세 번째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책의 시작이 글쓰기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는 게.


멀리 떨어진 바람에 지난 두 권의 책이 나왔을 땐 현장에 없었다. 누가 알려주거나 보여주면 그런가 보다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별다른 감정을 남기지 않았다. 이번엔 아끼는 셋째의 탄생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보이는 서점마다 모조리 방문했다. 마주한 최초의 감격은 컸지만 길지 않았다. 거대한 무대에 빽빽하게 들어선 네모난 책들이 내 책을 둘러싼 광경은 오싹했다. 해맑게 웃는 표지가 철없는 순둥이처럼 안쓰러웠다. 가녀린 녀석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유명한 아빠·엄마를 둔 금수저 사이에서 치여 나가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외떨어져 놓인 나의 분신을 볼 때마다 기쁨보다는 허탈이 몰려왔다. 그나마도 없는 곳을 발견하면 출판사의 조언대로 직원에게 찾아가 수줍게 작가임을 밝히며 새로 나온 나의 책이 없으니 주문해달라고 요청 같은 부탁을 해야 했다. 괜히 아들 얼굴까지 들이대서 이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 같은 핑계를 대며. 서점에 머물수록 기분이 밝아지긴커녕 땀구멍만 넓어졌다. 


그 당시 아내가 나를 부르던 별명은 메뚜기였다. 우연히 약속된 가나안 땅을 정탐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스스로 메뚜기처럼 약하고 하찮은 존재라며 해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초라해지는 게 딱 날 닮았다고 붙여줬다. 책이 있나 설레며 들어갔다가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보고 나오면 곧장 쭈그리가 되는 표정이 안타깝다고. 평소엔 신경이 쓰일 법한 상황은 애초에 차단해서 막는 방식을 택한다. 책이 나와도 일일이 반응을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다. 몸소 체험할 수 없는 타지에서는 통했지만, 눈앞에 버젓이 존재해서 만질 수 있는 고국에선 속수무책이었다. 판매량도 늘릴 겸 주위에 나눠줄 책을 한 권씩 사 모을 때는 낯부끄러워서 멤버십 적립도 하지 않았다. 고객의 성함과 산 책의 저자가 같다는 걸 들킬까 봐서. 바닥까지 내려간 자신감을 질질 끌고서 겨우 약속한 날에 맞춰 출판사에 도착했다. 


출판사 대표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내 책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 결정을 내린 경위를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들었다. 흡인력이 있는 문장의 원고가 좋았다는 칭찬으로 시작해서 출판인이라면 모른 척할 수 없는,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서 마음이 기울었다는 고백으로 끝맺었다. 하지만 오히려 덧붙였던 지나가는 말이 더 솔직한 이유로 와 닿았다. 다른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와 성공하면 배 아파질 책이라는 농담. 자괴감 근처까지 떨어졌던 내 책을 향한 확신이 한껏 부풀었다. 나 말고도 나만큼 믿는 사람이 있다는 확인은 든든했다. 마지막으로 원고의 수정이 많지 않았는데 어찌 된 거냐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건드릴 게 딱히 없기도 했고, 고친다고 해도 원안으로 다시 돌아갈 성향으로 보여서 그대로 두었다는 설명이 싫지 않았다. 속내를 털어놓는 관계라면 함께 힘을 모을 만한 거니까.


진실한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책과 저자를 소개하는 영상을 오래 찍었다. 읽는 글로 된 책을 알리려면 시청하는 영상으로 다가가야 하는 실상을 경험했다. 열심히 꾸며서 준비한 작가 홍석준으로 빙의해서 여러 말을 뱉었는데 중간중간 꼬일 때면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에 빠지곤 했다. 이게 정말 나인 건지, 아니면 책 속에서만 사는 나인 건지. 한 권이라도 더 팔겠다고 포장한 가면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그만두고 싶어지다가도 나만 바라보는 카메라를 보면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절박한 게 출판사라는 실토를 들은 뒤라서 차마 더 이상 못하겠다고는 못했다. 어색한 연기가 정신의 균열을 만들었는지 그날 밤엔 괴상한 꿈에 빠졌다. 못된 예전 상사가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서 요즘엔 책 만드는 게 너무 쉬워졌다며 자격 없는 놈은 다 잡아들여야 한다고 수갑을 채우려 덤비는 악몽. 허상인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뒤돌아 도망가다 굴러떨어지면서 식은땀에 온몸이 젖어 깼다. 


나 몰라라 내팽개치면서 도망가고 싶은 유혹은 계속 찾아왔지만, 나은 자식을 책임져야 하기에 꾸역꾸역 알린다. 잊을 만하면 연락해서 책 좀 사 달라는 녀석을 주변은 어떻게 바라볼까. 결혼식은 평생에 한 번이니 오랜만의 기별도 눈감아 주지만, 책이 나올 때마다 읍소하는 얘는 참 고생이 많겠다고 여기려나. 기대를 전제하고 건네는 안부는 민망하고 어렵다. 실망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싸매면 반복되는 행위에 감정이 빠지면서 지겹기까지 하다. 동정표라도 얻기 위해 퇴사를 들먹이며 퇴직선물을 운운하는 자신이 우스워지기도. 며칠이 지나도 대답이 없는 상대를 보면 후련해진다. 나는 전했고 그는 답장을 포기했다. 서로의 할 일을 다 했으니 깔끔하다. 세 번의 출간은 어지간한 무관심엔 상처받지 않는 맷집을 길렀다. 가만히 있으면서 운명을 원망하기보단 할 건 해놓고 여신의 행보를 뒤쫓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찍지 않은 내 책의 사진이 도착하면 입을 틀어막는다. 글이 느는 게 보인다는 오랜 친구이자 독자의 격려에 가슴이 울린다. 세 권의 책을 사서 읽은 작가는 하루키 말곤 내가 유일하다는 지인의 응원에 감사가 가슴에 스민다. 반드시 사서 보겠다는 다짐이 다른 약속처럼 언제나 지켜지지 않는 걸 이제는 알지만 그래도 고맙다. 의지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애정이 크다는 걸 아니까.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면 내 아이는 두 발로 서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질 테다. 애매한 곁눈질을 받더라도 좋다. 어떤 식으로든 존재의 향기를 풍겨야 조금이라도 긴 생명을 부여받는다. 행여 어긋난 사랑의 표현이라도 갈급하다. 괜히 시끄럽게 노이즈 마케팅을 조장하는 게 아니구나. 무플보단 악플이 나은 건지 모른다며 주목받아 보지 못한 관심바라기는 하릴없이 인터넷을 뒤적인다.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은 지난하다. 간신히 목을 가누고 나면 몸을 뒤집는다. 배로 밀며 나아가다 팔다리로 기어간다. 붙잡고 서다 혼자 선다. 기대어 걷다 결국엔 홀로이 걷는다. 사람 아이는 의지를 지녔다. 책 아이는 지은이의 의지를 따른다. 저자가 다 큰 어른이라도 묵묵히 버티고 시도하며 기다려야 책이 걸어간다. 바둥거리고 넘어지며 실패하는 걸 피할 순 없다. 답답한 울음은 떠나지 않지만, 또다시 해 보는 수밖에. 우는 아이는 잘못이 없다. 가진 잠재력을 내보이지도 못하고 무너질까 초조할 뿐이다. 울어도 내 아이는 마냥 예쁘기만 하다. 부모의 하염없는 사랑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혼자 걸어보겠다고 갖은 애를 쓰며 울어대는 아이에게 세상이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마다 젖을 준다. 스스로 걸어보라며 따뜻한 양분을 선물한다. 첫 인쇄로 나온 모든 책이 그들의 품에 돌아갔다. 어느새 쌓아둔 재고가 동이 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전 06화 간절히 바라던 탄생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