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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13. 2024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우리 엄마는 2가지 상황에서 절대 잔소리하지 않았어.
밥 먹을 때.
그리고 아침에 집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딱 그때를 아이를 향한 잔소리 시간으로 활용하는 나에게 전해진 아내의 잔소리에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그렇지, 맞지. 즐겁고 맛있는 식사 자리가 체하기 쉬운 긴장의 무대가 되면 안 되지. 또한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순간을 망쳐서 온종일 축 처지게 만들면 안 되지. 물론 내게도 이유 같은 변명은 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먹는 행위만 빼고 집중하기 때문에, 학교 가기 전엔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움직여 만성 지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럼에도 쏟아내고 나면 바로 후회하는 걸 보면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밥 먹을 땐 아무 말 하지 말걸. 가뜩이나 먹는 데 흥미가 없는데 이러다 더 안 먹으면 어쩌지. 등굣길엔 편하게 보내줄걸. 안 그래도 엄마 아빠 없이 떨어지면 걱정이 태산인데 불안해서 어쩌나. 언제 또 깨질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 두 가지 장면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참기로 했다. 일단 끓어오른 감정을 한 번 삭이고, 여전히 필요하다면 적절한 시간을 찾아서 나중에 이야기하는 걸로.


더 이상 아기 때처럼 모든 것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건 아이도 잘 알고 있다. 실수와 잘못을 한 뒤, 마냥 해맑게 웃으며 넘어가려는 시도가 줄었다. 오히려 늘 붙어있는 내 눈치를 유심히 보는 게 느껴진다. 이건 좀 아닌데 싶어서 한 번은 물었다. 혹시 아빠가 무섭냐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아들의 문장엔 당연과 의외가 들어있었다. 밥 안 먹는다고 혼내면 무섭고, 화가 나 있는 상태(일명 뿡뿡이 모드)일 때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밥은 먹을 때마다 억지로 앉아있는 게 보여서 아무 말 안 하기 어려운 참을성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다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꼭 날카로움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은 몰랐던 사실이다. 직접 화를 내지 않더라도 옆의 아이는 화를 받아내고 있었다. 무서운 아빠가 되기 싫어 주 양육자를 자처했는데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멀지 않은 뒤를 돌아보았다. 스스로 유리한 기억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멀쩡했다. 해를 걸쳐있던 길고 긴 방학은 휴식과 여유로 가득했다. 좋아하는 축구 연습과 수영을 함께 자주 했고, 새롭게 원하는 두발자전거를 새로 장만해서 가르쳤다. 캠핑 가서 늦게까지 간식 먹으며 영화 보는 걸 집에서 하는, 일명 룸핑(룸+캠핑)을 종종 즐겼다. 은은한 조명과 은근한 음악을 유지한 채로 잠을 청하는 밤을 아들은 사랑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도시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미술 선생님과 교회 삼촌 이모의 파티 초대로 화려한 연말을 보냈다. 마음껏 풀어진 시간을 보내다 결국 몸이 견디지 못해 아이는 병을 얻어 앓아누웠다. 길게 이어진 감기는 방학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다. 몸은 불편했지만 회복을 위해 편안한 시간을 보낸 아이와 곁을 지킨 나는 마찰이 적었다.


아마도 방학이 끝나고 새롭게 시작된 새 학년에 들어가면서 서로의 긴장이 올랐던 것 같다. 새 선생님과 새 친구를 맞이하는 아이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개학 직전 반 편성을 안내받고 새로운 교실에 방문했을 때, 서랍의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읽어보더니 친한 친구가 딱 한 명인 걸 알고는 실망했다. 이제 저학년도 아닌 4학년이나 되었는데 떨림 넘치는 모습이 내심 답답했다. 곧 어울리면서 즐겁게 다닐 텐데 뭘 그렇게 안절부절못할까 싶어서. 그래도 당사자 본인이 제일 어렵겠거니 이해하며 학교로 복귀한 첫 주는 티를 내지 않고 옆에서 응원했다. 다행히 아들은 다른 해의 첫 번째 주보다 눈물을 덜 흘렸고, 성실하게 생활하여 반에서 첫 '스타 스튜던트'에 뽑히는 기염을 토했다. 우습게도 나의 마음 넓은 지원은 여기까지였다.


무난히 지나간 첫 주를 제외하고는 부드럽지 못한 기억으로 채웠다. 아이의 전매특허인 아침 식사 제대로 안 먹기와 학교 갈 준비 늦장 연합을 견디지 못하고 교문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돌아서며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지만, 학교 끝나고 만나면 금세 뾰족해졌다. 열 중 아홉은 도시락을 남겨오는데, 그럴듯한 오색찬란한 이유를 듣고 있으면 곧장 열이 난다. 혼자서 생활하는 학교의 앞뒤를 포근하게 감싸줘야 하는데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했던 소리를 지겹지도 않게 반복한다. 이러니 잠시 좋다가도 언제든 불이 오르는 아빠가 아이에게 무서운 사람이 되고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러려고 붙어 있는 게 아닐 텐데, 참.




얼마 전 학교의 교육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가슴을 치는 문장을 만났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시간(Time)과 존재(Presence)이다.' 표면적인 의미만 따른다면 직접 돌보는 난 내 시간을 들여서 아이 곁에 존재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건 내 판단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붙어있던 하루를 보내고 자기 전에 "오늘도 잘 놀았지?"라고 물으면 의외의 대답을 듣는다. 요즘엔 아빠가 같이 잘 안 놀아 준다고. 어딜 데려다주고, 같이 밥을 먹고, 옆에 앉아 있어도 그건 함께 한 게 아니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자신과 직접 노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아들에게 주는 진정한 시간과 존재는 원하는 놀이로 같이 채우는 것을 의미했다. 내 기분을 풀자고 던지는 잔소리나 화가 아니고.


아이를 키운다고 계속 붙어있으면서 착각했다. 내 모든 걸 이 친구에게 주고 있다고. 지혜로운 가르침이 아닌 듣기 싫은 설교도 다 필요한 거라고 여기면서. 나라는 존재가 벌써부터 불편하게 신경 쓰이지 않도록 달라져야 한다. 아이에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시간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어 본다. 함께 잠들 때 여전히 안고 쓰다듬어주는 아이가 느껴지니까.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텅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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