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부 밖에 있다. 내 방에서 살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없으면 살 수 없는 것도, 있으면 기분이 좋은 것도 다른 사람에게 구해야 한다.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걸 가졌던 슈퍼마켓 주인아저씨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이라 여겼던 어린 시절은 지나갔다. 그도 나와 똑같이 다른 걸 사기 위해 돈을 버는 신세란 걸 알게 된 지 오래다. 우린 끊임없이 물건을 구매한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사용하는 모든 걸 사서 쓴다. 그중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들락날락하는 곳은 여기다. 입에 들어갈 음식을 파는 식당.
남이 해주는 음식을 떠서 입에 넣으면 생각에 잠긴다. 음식점의 기원은 무엇인지. 각자의 집에서 해 먹다가 갑자기 실력이 특출난 사람이 뽐내며 차린 게 시작일까. 밥 해 먹을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이 옆집에 신세를 지으며 돈을 주던 모습이려나. 군소리 없이 잘 먹다가도 때론 이 가격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집에서 해 먹으면 절반도 안 되는 재료값에, 양도 몇 배는 나올 거라고 따져보며. 잠깐 울컥하지만 장보고 준비하고 요리하고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려보곤 제값이 맞는다며 곧 차분해진다. 어떤 가게보다도 식당이 없으면 세계는 대혼란에 빠질 게 분명하다. 먹는 즐거움만 남기고 번거로운 뒤치다꺼리를 해결해 주는 귀한 장소. 어디서든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꿀팁을 지금 바로 얻어가자.
꼭 가보고 싶어서 벼르고 별러서 갔지만 문을 닫았다. 모두 한 번쯤은 해본 허탈한 경험. 도대체 이날은 왜 안 하고, 또 이 시간엔 왜 먹을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따라야 하는 규칙. 인터넷에 정보가 있어도 틀릴 때가 있다. 가게 앞에 붙어있는 오픈 시간이 실제와 다르기도 하고. 이럴 땐 직접 물어보는 게 최고다. 최소한 사장은 가게 문을 언제 열고 닫는지 알 테니.
굳이 어렵게 어느 요일, 몇 시에 하는지 묻지 말자. 당신의 시간, 그러니까 이 가게가 운영되는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 걸로 충분하다. 들려주는 답변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맞춰서 제대로 즐기자. 괜한 헛걸음은 이제 그만. 아쉽게도 대부분 사장이 아닌 피고용인 입장인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다른 뜻이 된다. 직장에 잡혀 있는 시간, 그러니까 근무 시간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 셈이다. 내 가게를 여닫는 확실한 시간처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대부분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장담할 수 없다고 할 테지. "그가 보내줘야 집에 가죠!"
길을 걷다 오늘은 여기다 싶어 잽싸게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메뉴판에 눈이 돌아간다. 무엇을 고를지 도무지 모르겠다. 취향이 확실한 앞사람은 적절하게 주문을 정해 간다. 난 그저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뿐인데 참 어렵다. 입맛이 까다롭지도 않아 뭐든 잘 먹을 자신이 있는데. 모를 땐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게 정답이다. 슬쩍 손을 들고 도움을 청한다. 살려주세요!
흔히 떠올리는 '가장 맛있는, 인기 있는 메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공손하게 격식을 갖춰 '추천해 주시겠어요?'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너도나도 아는 'Good'이면 족하다. 여기 뭐가 맛있냐고 간단명료하게 묻는 게 깔끔하다. 혼자 해결하지 못해 공을 넘긴 신세니, 소개하는 직원을 믿고 맡긴다. 제일 대중적인 선호를 반영한 음식을 알려주기 마련이다. 이 메뉴가 맛이 없으면 그 집은 다 별로일 가능성이 높다.
먹는 이유는 맛을 즐기는 데도 있지만 생존이 먼저다. 배가 고플 땐 입맛도 마음이 넓어진다. 중요한 게 식감이 아닌 포만감이 되는 꼬르륵 넘치는 순간. 끼니때를 놓쳐 급하게 배만 채우면 되는 상황에 가끔 부닥친다. 뭐든 뜯어먹을 기세로 급하게 들어선 가게에 나 말고도 기다리는 빈 테이블의 허기진 자가 많다. 내 차례를 세어보니 그땐 이미 쓰러져있을 것 같다. 절망스럽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간절하게 손을 쳐들고 긴급히 묻는다.
가장 빠르게 나오는 걸 단도직입으로 물어 확인한다. 이미 조리되어 있는 걸 데워주든 남은 음식을 합쳐 주든 상관없다. 뭐든 당장 식탁에 가져다줄 먹거리면 된다. 아사 직전의 정신 나간 표정을 안타까워하며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줬다. 이제 남은 건 버티는 일이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감기는 눈꺼풀을 뒤집어 까며. 주방에서 갓 만든 음식이 나온다. 내 것이 확실해서 신속히 자리를 정리하고 음식 놓일 공간을 확보한다. 구원의 손길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나를 스친 종업원은 옆 테이블로 향했다. 온몸이 무너지는 좌절감. 과연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