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오게 되었다.
부산, 전주, 청주 여러 곳에서 살아 보았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에서는 한 번도 거주한 적이 없었다. 예전에 일 때문에 잠시 서울을 방문할 때면 '아, 나랑은 정말 안 맞는 곳이구나. 나는 못 살 것 같아.' 하고 생각을 했었다. 진정한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서울 지하철을 처음 맛본 시골쥐의 생각이었다.
이런 나였기에, 나에게 서울로 가서 생활한다는 것은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서울에 온 지 약 일주일이 되었다. 어떠한 지원이나 보장되는 것 없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나는 달랑 어깨에는 배낭을 메고, 손에는 캐리어 하나를 들고 상경했다. 이 모든 시작에는 상사의 권유가 있었다. 서울에 있는 지점에 가서 해보지 않겠냐고. 프리랜서 생활이기에 지점을 바꾸는 것, 더욱이 지역을 바꿔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무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아니, 무가 아니라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만나고 가르치고 있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다가 이 일을 하신지 오래된 한 선생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혜인쌤, 전국 트레이너가 되려면 전 지역을 다 가보는 것이 좋아. 부산에서 아이들 코칭을 잘한다고 해서 대전이나 서울, 다른 지역 가서도 잘하는 것은 또 아니더라고. 기회가 된다면 전국을 가며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해."
그리고 '그래,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해도 지금 나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나의 귀로 들은 일들은 다 나에게 주는 메시지이고, 기회이다. 그리고 결국은 다 나의 선택이다. 한 번 해보자.'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서울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떠나기 전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과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만나 서울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 어머니는 너무 아쉬워하시면서 다음의 일화를 전해 주었다. 아이와 어머니가 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는데, 아이가 어머니에게 "엄마도 학원 다녔어? 개인 과외를 한 적 있었어?"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는 나를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엄마, 나는 선생님 참 잘 만났다. 그치?"라고. 어머니는 "그러게. 우리 참 복이 많네."라고 답하셨다고 했다.
또 다른 어머니는 앞 면에 손수 편지를 쓰신 책과 선물을 보내주셨다. 편지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서울 가기 전 미안함, 죄송함을 건네는 내게 이들은 매 순간 감동과 감사함을 전해 주셨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명상을 시작했고, 모든 아이들이 좋은 사람의 꿈을 갖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의 헤어짐을 말하면서 아이들, 어머니들과 함께 나눈 대화들이 내게 "너는 이미 네가 바라고 노력하고 있는 그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어요.'라고만 말하기에는 많은 걱정과 고민을 했다. 지금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된다는 나의 꿈과 신념은 잊지 않고 순수하게 나아갈 것이다. 나는 잘 할 것이다. 이미 내 안에 그들이 눈빛, 말, 글 등으로 전해준 꿈의 동력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