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목격하는 일

by 달꽃

나는 13년째 일기를 쓰고 있다.

5년 일기장 1권, 3년 일기장 2권을 다 쓰고, 새로운 3년 일기장 1권을 지금 2년째 쓰고 있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매일매일 한 줄이라도 써야지."라는 목표를 잡고 애써 마음을 내어 시작하였다. 이제는 굳이 마음을 내지 않아도 일기쓰기는 나의 당연한 하루 끝마무리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항상 무언가 처음 시작하고 내 안에 자리 잡을 때까지는 '애써, 굳이'가 필요한듯싶다.


1년 일기장이 아닌 다년 일기장을 쓰게 된 데는 어머니의 추천이 있었다.

나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성장 단계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년 일기장을 쓰며 내가 발견한 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내 인생에서 연단위로 반복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작년 7월에 친구를 보러 청주에 갔었는데, 그로부터 1년 후인 작년 그 즈음에는 직장을 청주로 옮겼다는 것. 이런 굵직굵직한 상황뿐만 아니라 자잘자잘하게 사소한 일들도 비슷한 시기에 겪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쳇바퀴 같은 삶'이라는 말에 대한 근거를 발견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말에 반박하듯 달라진 것이 있었는데, 그 상황들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그래서 엄마의 추천 이유처럼 나의 일기장은 단순히 하루 기록장 혹은 감정 정화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작년, 재작년의 나보다 얼마만큼 성장하였는지 바라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오늘도 일기를 쓰다가 작년 오늘의 일기를 보았다. 일기의 끝자락에는 "매 순간 사랑을 목격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작년의 오늘은 한 학생의 아버님과 통화한 날이었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지점의 학생이 아니라 다른 지점에 소속된 학생의 아버님이었다. 전국 지점에서 몇몇의 아이들이 모여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투어하는 해외 캠프를 앞두고 있었는데, 해외 캠프 시에는 진행 선생님이 소속 지점에 상관없이 섞인 10명 정도의 아이들을 한 조로 하여 맡았다. 그날은 해외 캠프 전 내가 맡은 아이들의 학부모님들께 사전 준비 연락을 돌리는 중이었다. 보통 이러한 연락은 어머니들과 많이 하게 되는데, 종종 자녀에게 관심이 많으신 아버님들과 통화를 하기도 한다. 아버님 연락처만 기입된 기록을 보며, 아버님께 전화드렸다. 전화받으신 아버님의 말씀 속에서 아버님 특유의 단단함과 툭툭함, 당신과 라포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로 인한 머쓱함, 그럼에도 나에게 모두 다 전해주시려는 아이에 대한 염려를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부담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이를 잘 챙겨달라는 걱정과 당부였고, 나는 아버님의 투박함에서 새삼스레 아이에 대한 사랑을 더 진하게 느꼈나 보다. 또 이날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어머니를 만났던 날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어디에서도 말 못 한 감정들과 일들이라며 눈물로 쏟아내셨다. 자세한 건 말할 수도 내가 단언할 수도 없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나날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매 순간 아이가 첫 번째였다. 그래서 어머니께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셨고 정말 강인한 분이라고 말씀드렸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겪은 날, 나는 일기에 '사랑을 목격할 수 있어 감사하다.', 그렇게 적었다.


수업과 상담을 하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또 그에 따라 어머니들과 다양한 양육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처럼 많은 말들을 듣고, 많은 말들을 이야기하게 되면 체력적으로 방전이 되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살아나고 생기가 돌았다. 얼마 전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작년 일기장에 썼던 말과 비슷했다. 어떠한 계산 없이 순수하게 한 사람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 사람의 앞날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그 마음이 참 숭고했다. 그러한 마음에 뿌리를 두고 조금은 젊어 보이는 선생의 말도 귀 기울여 신뢰하시는 모습에 감사했다. 당연한 거라는 어머니들의 말씀에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고, 그래서 나는 울타리 밖의 타인이지만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나는 올해의 일기장에 상담하며 마음이 지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작년의 나보다는 더 성장한 나로 기록하고 싶으니, 작년의 말에 덧붙여 이렇게.


"매 순간 사랑을 목격하고, 느끼고 배우고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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