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으로 한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매 모임마다 주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번 모임의 글의 주제는 '포비아'와 '필리아'였다. 포비아란 공포나 두려움, 필리아는 포비아와 반대되되는 개념으로 친애를 의미했다.
'포비아'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것은 21살의 나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두려워 버스도 타기 어려웠던 나.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아마 소셜포비아, 대인공포증이 아니었을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히 나를 뒤덮은 진물과 화상을 입은 듯한 지글지글한 느낌들로 인해 눈도 뜰 수 없어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의 20대 초반의 약 2년간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이제 많이 회복한 느낌에 도전과 용기, 약간의 설렘과 즐거움으로 밖을 나섰던 내가 느낀 감정은 안타깝게도 '공포'였다. 바깥공기 자체는 행복했다. 자유로웠다. 다만 혼자 있어야만 가능한 감정이었다. 버스를 타 카드를 찍을 때 '띡'하고 나는 그 소리가 그렇게도 부담스러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마치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길 보시오. 나의 흉터와 진물 가득한 얼굴을 보시오.'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장난기 많은 나였기에, 또 우울해하지 않고 즐겁게 잘 이겨내왔다고 스스로 믿었던 나였기에, 공포에 휩싸인 내 모습이 낯설었다. '아닌데, 나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부정도 해보았지만 무서워하는 나를 이해하고 안아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연기 학원을 등록했다. 주목받는 것을 즐겨보자며 나름 내가 진단 내린 치료법이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나 좌절되며 흘러간 내 꿈과 시간에 대한 독기였다. 그때 만났던 연기 선생님은 아직 아물지 않아 곰보 같은 내 피부가 중요치 않으셨던 것 같다. 나에게 오디션을 추천하셨고, 후에 같은 학원 언니,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학원에서 혜인이가 희망이다."라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학원의 희망은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한테 물었다.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피부, 외관은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답해주셨다. "지금 이 모습이 극에서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니 중요한데 중요치 않다."라고.
그렇게 이겨냈다면 행복하고 안정적인 이야기의 흐름이었겠지만 나는 다시 재발되어 피부가 더 악화되는 상황을 마주했다. 그래서 자연이 가득한 곳에 들어가서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럼에도 지난 연기 경험 치료법 덕분인지 거울 속에서 괴물 같은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 때 되뇌었던 말 '지금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시간이다.'를 더 깊고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남들은 아직 내 얼굴을 보고 놀라워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그럼에도 난 회복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또 연기 학원을 갔다. 그렇게 1년이 흐르니 내 마음도 피부도 많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한 대학교에서 제작하는 단편영화의 오디션을 보러 갔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 대학생들을 보자 또 숨이 막히는 듯했다. '아, 아직 또래들을 마주하는 것에는 공포감이 있구나.' 나를 이해했다. 달랬다. 거의 실눈을 뜨고 오디션장으로 갔다. 그런데 나를 달래며 어떻게 본 지도 모르겠는 그 오디션에 붙었다. 이를 시작으로 몇몇의 대학교를 다니며 작은 단편영화들에 참여를 했다. 여러 가지를 돌파하는 시간이었고 치료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인파 속으로 들어갈 때 숨 막히고 가슴 부여잡는 시간과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주목받는 상태에서 연기는 어떻게 했냐고들 많이 물었다. 그러게 잘 모르겠다. 그땐 괜찮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는 겁이 많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또 그로 인해 찾아온 포비아가 내가 발전하고 도전하는 의지를 내는 데 이 악물게 해준 것 같다고.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는 소셜포비아보다 꿈로스트포비아가 더 무서웠던 게 아닐까.
꿈로스트포비아는 그냥 내가 붙인 말이다. 나는 내 의지와 선택이 아닌데 꿈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팠다. 그냥 흘러 가버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수업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 꿈은 직업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버킷리스트 등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그저 아이들이 얼마든지 꿈꿀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는 밝음과 그 나이대에서 뿜을 수 있는 반짝임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없어 주저하고 있을 때 언제든 지지해 주는 어른이 여기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음이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필요하다. 또 살아가면서 어떤 이유로든 내 꿈이 막히고 좌절을 맛봐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이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다. 꿈을 찾았으면 좋겠다. 어떤 순간보다 그런 상황일 때 더 격렬히 자신의 꿈을 찾고 자신이 존재할 양식을 찾는 힘을 가진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리아'는 '애정'이라는 뜻도 있고,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내가 포비아를 이겨 내려 애써왔던 마음이 꿈필리아를 만들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로스트포비아가 만든 꿈필리아.
아이들을 만나며 또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꿈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누구든, 언제든, 어떤 형태이든 한 사람의 꿈을 지지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