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주는 사랑

by 달꽃

오랜만에 부산 본가에 내려갔다.

아빠와 엄마는 늦은 밤이지만 늦은 밤이기에 딸을 데리러 부산역에 나와 주셨다. 일 마치고 바로 와서 배가 너무 고프다며 칭얼거리는 딸에게 평소였음 밤에 먹지 말고 내일 먹으라고 타일렀을 텐데 오랜만에 보는 딸에게 다해주고 싶으셨던 건지 밥도 못 먹고 일한 딸이 안쓰러웠던 건지 집에 남은 아귀찜이 있다며, 심지어 아빠는 차려주겠다며 이야기했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아빠는 밥을 차려 주셨다. 밥을 먹는 내 옆에서 엄마는 자신도 입이 심심하다며 빵을 먹기 시작했다. 아빠는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셨는지 자리에 일어나려 했다. 엄마는 가려던 아빠를잡아 자신이 먹고 있던 빵을 한번 먹어보라며 떼어 주려 했고, 아빠는 안 먹어도 괜찮다고 양치하러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약간의 애교와 뽀로통함을 머금고 "이거 진짜 맛있는 빵인데, 맛만 보지."라고 말했다. 아빠는 못 이기는 척 "그럼 한번 먹어볼까?" 하며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빵을 맛있게 드셨다. 드시다보니 진짜 맛있으셨는지 아빠도 엄마 옆에 앉아 빵을 같이 먹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만 시선 고정하고 두 사람의 모습에 크게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사실 흐뭇하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릴 때가 생각났다. 내가 과자를 먹으려 할 때 아빠도 하나 드시라며 입에 넣어 드리려고 하자 아빠는 자신은 과자 안 좋아한다고 혜인이 많이 먹으라며 극구 사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엄마가 아빠에게 한마디 했다. "그렇게 기겁할 것까지 뭐 있어. 그래도 아이가 주면 한번은 먹어봐. 받아먹는 척이라도 해봐."라고. 싫어도 주는 손을 한번은 잡아 보것이 가족이니까 필요함을 엄마는 이야기했다. 아무리 어릴 때의 일이라도 인상 깊은 영화의 장면들처럼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이 몇 있는데, 그 기억들 중 하나였다.


어려서부터 집안 가장의 역할로 혼자 열심히, 악착같이 살아온 아빠의 사랑은 착하고 곧고 한결같았다. 그래서 아빠에게 사랑은 당신은 먹지 않고 내가 과자를 다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를 만나, 맛있는 게 있을 때 상대방에게 다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입에 넣어 주며 함께 먹는 것도 사랑임을, 그리고 내가 싫다고 생각한 것을 한번은 내려놓고 상대에게 귀 기울이고 못 이기는 척 따라가보는 것도 사랑임을, 그렇게 서로가 섞이는 사랑을 배워가는 듯했다.


서로의 취향과 상황을 존중해 주는 것도 사랑이고, 강요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많은 형태의 사랑이 있지만 오늘따라 아빠의 져주는 사랑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도 어느 순간에는 나를 너무 고집하진 말아야지. 한 번쯤은 입을 벌리고 상대가 주는 빵을 먹어 봐야지. 그러면 나도 아빠처럼 먹지 않으려 했던 빵의 맛을 알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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