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그저 "그냥"이라고 답하는 순간들이 있다. 답하기 귀찮거나 생각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냥"인 것이다. 말로 그 이유와 정당성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저 나의 느낌이 그렇다고 말해줄 때 말이다.
그런데 이 느낌, 이 "그냥"을 일을 할 때 사용하면 죄악이 될 때가 많다.
대다수가 그러겠지만 나 또한 원래의 나와 일을 할 때의 나 사이에 간극이 있다. 나는 그 간극이 아주 많이 벌어져 있는 편인데, 한때 유행했던 MBTI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을 할 때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극 ST형이 되고, 평소에는 감정을 주고받고 추상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NF로 생활을 한다. 이는 아마 일을 처음 가르쳐 준 고맙고도 무서운 상사에게 스파르타 트레이닝을 받은 터이지 싶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시작하며, 일을 할 때의 나와 평소의 내가 많이 친해진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할 때, 특히 문서가 오고 가는 일을 할 때는 느낌과 감정을 극도로 경계한다. 두루뭉술하게 사람들과의 정으로, 그냥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는 그 느낌의 "그냥"이 일을 그르치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또 이 느낌, "그냥"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바로 느낌에 치우쳐 '느낌의 오류'를 범했을 때이다. 오류가 발생하게 되면 이 "그냥"은 속되게 표현될 수 있는데, 바로 '내 쪼대로 생각하기.'이다. 잘못된 느낌이 생각,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나도 한 번씩 '느낌의 오류'를 범할 때가 있는데, 범하게 되는 때는 내가 가진 섬세함이 '사람과 관계'라는 범주에 적용되었을 때가 대부분인 것 같다. 사람의 말투와 억양, 표정 모든 것을 총집합하여 이 사람이 말한 말의 이면을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일'이라는 매개가 있으면 이 부수적인 요소들이 지워지는데, 정말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을 때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도와 집중도가 올라가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 느낌은 나를 배려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내 느낌이 맞다'라는 약간의 착각과 오만, 자만이 내 기저에 있었나 보다. 내가 힘들 때는 이럴 때이다. 저 사람의 마음이 불편한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나인 것 같을 때나 내가 가진 느낌으로 사람을 판단하였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 불편감을 주었을 때이다. 그래서 나는 '단순해지기', '있는 그대로 보기',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함부로 작아지지 않기' 등 아이들을 트레이닝을 시켜주듯 나 스스로도 트레이닝을 시킨다. 끝없이 느낌, 감정과 사실, 판단을 분리하려 애를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동한 장례식장에는 이미 친가의 가족들이 많이 모여 계셨다. 솔직하게 말하면 친가의 가족들과는 코로나 전에도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정도였는데, 코로나를 맞이하고 또 서로의 환경이 계속 급변하다 보니 더욱더 왕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 '길에서 만나도 못 알아볼 것 같다.' 그럼에도 다들 모여 앉아 옛날이야기를 두런두런 하시는 어른들의 말씀들을 듣고 있으니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안 보면 남이라는 말에 공감하던 요즘, 가족은 한참 안보다가 다시 만나도 한 공동체, 한 편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구나 싶으면서 가족이 맞긴 한데 어쨌든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큰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키가 훤칠하시고 능청스러움과 센스로 무장했던 큰아버지께서 이번에 알츠하이머라는 친구와 함께 오셨다. 작년에 그 병이 발견되었는데, 사촌 언니, 그러니까 큰아버지의 따님이 재작년에 결혼을 하였으니, 큰아버지께서 언니가 결혼한 것을 보셔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내내 먹먹했다. 큰아버지는 오직 자신의 부인만 알아보신다고 한다. 큰 아버지의 유일한 지지대인 나의 큰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매일 치료 센터를 다녀오면 나에게 빵을 줘. 거기서 주는 빵을 나 주려고 본인이 먹지 않고 잘 보관해두었다가 집에 오자마자 주는 거래."
계속되는 큰어머니의 말에서 긴 세월 큰아버지와 쌓아 온 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순간도 큰어머니에게 있었을 것이라 섣부르게 짐작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순수한 아이가 되어 온기 가득하게 표현하는 큰아버지의 마음이, 혹은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연애 시절로 돌아간 듯 설레고 먹먹한 느낌이 큰어머니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듯했다. 큰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지만 아주 긴 시간 자리를 지키셨고, 장난기 많은 작은아버지가 자꾸 장난을 치시니 큰아버지는 장난치는 이가 누군지 몰라 연신 존댓말을 하시면서도 중간중간 아주 해맑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큰어머니가 "참 이 사람이 이런 적이 처음이네. 낯선 곳을 가면 바로 집에 가자고 하고 조금도 가만히 못 앉아 있는데, 이렇게 엉덩이 붙이고 있고 웃는 거 보니 좋은가 보다. 못 알아봐도 가족인 걸 느낌으로는 아나 봐. 참 신기하네." 그러셨다.
느낌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아니 너무 느낌에 기대는 나를 경계하고 있던 나였다. 나는 여전히 느낌을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느낌은 느낌이고, 나는 나대로 서있는 힘,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너무 경계하려 힘을 주고 있었던 탓일까. 아니, 어쩌면 느낌을 제대로 보고 인지하고 경계한 것이 아니라 무시하는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떠오르는 큰아버지의 순수한 눈빛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 탁 하고 풀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큰아버지가 '네가 느끼는대로 살아도 괜찮아. 실컷 웃어도 되고, 울어도 되고, 상처받아도 되고, 실수해도 되고, 너만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살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느낌을, 내 감정을 더 존중하고 살아야지. 그냥 느낌이 말해줄 때 귀를 잘 기울여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