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어릴 때부터 내 이름을 넣어 불러준 노래가 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우리 혜인이"
아빠는 그렇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주고 있어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셨고, 지금도 나는 그런 사랑을 받고 있다.
어느 날은 그랬다.
"오늘 몇 시에 오니?"
최근 엄마가 다른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시고 또 동생이 이직하여 독립을 하면서 집을 지키는 이는 아빠와 나뿐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오후 5시쯤이면 아빠는 나의 퇴근 시간을 묻는 문자를 보낸다. 나는 어릴 때부터 통금 시간이 딱히 없었다. 내가 행동반경이 그리 넓지 않은 사람이라서도 있지만 원체 부모님께서 크게 통제하시는 분들이 아닌 것도 그 이유였다. 그래서 나의 퇴근 시간을 묻는 아빠의 마음은 구속이 아니라 '밥은 먹고 오려나', '오늘도 늦게까지 힘드려나', '오늘은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으려나'하는 마음일 테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알고도 퇴근 시간이 불규칙하다 보니 나의 대답은 시간을 알려드릴 때 보다 '잘 모르겠다'일 때가 더 많고는 했다.
"한 8시쯤 집에 도착할 것 같아요. 근데 더 늦어질 수도 있어요."
오늘은 일이 많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곧 퇴근할 것 같은 분위기라 다른 날보다 비교적 당당히 시간을 적어 답하였다. 한창 일을 하고 있으니 팀장님이 내 자리에 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에게 말한 시간이 있으니 내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나누는 이야기가 무거운 이야기였기에 잠깐 통화를 하거나 문자 하나 남겨 놓는 움직임 자체가 조심스러워 그저 계속 듣고 있었다.
팀장님과 이야기 마무리가 될 때쯤 시간을 보니 어느덧 9시였다. 집에 갈 준비를 하며 나는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미안해요. 너무 늦었지? 아빠 식사는?"
"너 기다리고 있었지."
"아이고, 시간이 늦었는데 아빠 먼저 드시지. 저 조금 더 늦어질 것 같으니 먼저 드시고 계셔요."
"아니야. 아빠 늦게 밥 먹어도 되니깐 천천히 와."
아빠는 늦게 밥 먹어도 되니 천천히 오라고 하셨지만 내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냥 나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밥 먹지. 괜히 사람 마음 불편하게.'라며 미안함과 못된 투덜거림을 이고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사람이 한 3,4명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많은 양이었다. 아빠는 양에 놀란 내 얼굴을 봤는지 "천천히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 우리 내일 출근 전에도 이거 먹고 가자."라고 말했다. 유부초밥을 먹으며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왜 짜증도 안내? 배고팠을 텐데. 아빠가 밥을 안 먹고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몰랐네. 먼저 드시지."
"우리 딸 열심히 일하고 오는데 같이 먹으면 좋지."
내 배처럼 마음도 불렀는지 '나는 혼자 먹어도 되는데, 그냥 서로 편하게 먼저 드시지.'라는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왔지만 아빠에게 그 마음을 전하지는 않았다.
"아빠 내일 아침에는 몇 개 드시고 갈 거여요? 나는 2개만 먹어도 충분할 듯!"
"너는 많이 먹어야 영양 충전이 된다. 너 유부초밥 좋아하잖아. 많이 먹고 가."
"아니야. 아침에는 많이 먹으면 별로야. 아빠 많이 드시고 가셔요."
그냥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가면 될 걸 우리는 서로가 더 잘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보'와 '강요' 사이를 왔다 갔다 하였다.
다음 날 일어나서 보니 아빠는 내가 말한 2개에 기어코 2개를 더 남겼다. 항상 새벽에 출근 전, 밥을 든든하게 드시는 아빠가 떠오르며, 아빠는 절대 배불러서 남긴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빠는 참 무엇이든 기어코 나에게 더 주네.'
또 한 날은 나의 출근 시간이 빨랐던 날이었다. 아빠와 함께 출근하려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내게 아빠는 오후에 비가 올 예정이니 우산을 챙기라고 하셨다. 알겠다고 대답까지 하고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버스 정류장에 거의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아빠는 타박 하나 없이 "그럼 아빠 우산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아니야. 아빠는?"
"아빠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이 회사여서 괜찮아. 아마 회사에 또 우산이 있을 거야."
"아니야. 그래도 지하철 내려서 좀 걷잖아. 비가 빨리 올 수도 있어. 아빠 가지고 가. 학원에 주인 없는 우산 많을 거야."
우리는 또 서로를 생각하며 '당신이 우산을 들고 가세요', '괜찮습니다'를 반복하였다.
아빠가 오늘은 내 말에 져주려나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으시더니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버스를 타기 직전 아빠는 기어코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혜인아, 그런데 이 우산이 너무 작다. 아빠보다는 너한테 딱 맞는 우산이야."
오늘도 내가 졌다. 아빠의 마음이 이겼다. 이 정도면 아빠의 마음을 받아야 했다. 이날 점심시간에 비가 정말 많이 쏟아졌다. 아빠가 아침에 건넨 우산을 쓰고 점심 먹을 식당으로 이동하며,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문자를 남겼다.
다른 선생님들과 어머니들이 내게 그런 말들을 많이 하시고는 한다.
"아이들에게 정말 진심이시네요."
"참 아이들에게 모든 마음을 다 주네요."
사실 내가 만난 '선생님'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계신 모든 분들은 자신의 학생에게 진심이시고 애를 쓰시는 분들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자신의 직업에 사명을 갖고 아이들을 대하고 계실 테다. 그렇기에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의 범주에서 종사하고 있는 내가 '진심', '마음을 다 준다'라는 이런 말을 들어도 될지 부끄럽고 민망하였다. 다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오늘도 '주는 사랑'이 나를 채우는 것을 느낀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주는 사랑을 할 수 있고 그 사랑에게서 채워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마 아빠에게 기어코 받은 사랑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돌이켜 보면 나는 아빠의 기어코 주는 사랑들은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고,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며 투덜거리고 배부른 순간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주는 사랑에 행복해하는 내가 보이니, '이러한 행복은 아빠가 알려준 거구나', '무한한 마음을 받아 보았고, 받고 있기에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구나'알게 된다. 그래서 아빠의 그 기어코 주는 사랑에 불평 대신 가슴이 찌르르 거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