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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숙려캠프

[책] 알랭드 보통 - 낭만적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낮잠

결혼에 대한 잠언집같은 소설 <The course of love>를 읽었다. 번역된 제목은 마음에 안들고 원제가 진짜 이 책을 대표하는 제목같다.

읽다가 중도포기한 경험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내가 결혼에 대해 가장 자주 인용하는 문구가 이 책의 말미에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물론 이 문장 전체를 다 인용하지는 않고, 인용하고 싶지도 않다. 현학적인 단어들을 켜켜이 늘어놓는 소설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이란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편이다. 요즘 이혼숙려캠프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이 책은 마치 결혼숙려캠프 같다. 소설이라는 장르로 따지자면 불호지만, 결혼에 대해 숙고해야 하는 부분들을 잘 짚어주는 문장들이 많아 필사해놓기 좋았다. 나만의 <결혼숙려캠프>를 보내며 노트에 끄적이고 싶은 말들. (근데 결혼할 사람이 없잖아?)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주는 것뿐이다.'


'사랑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기술이라는 것 말이다.'


'젊었을 때 그는 결혼 생활을 감정(애정, 욕구, 열정, 갈망 등)에 대한 축성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못지않게 하나의 제도로서도 중요하게 인식한다.'


'우리는 정직성에 너무 감명하는 탓에 정중함의 미덕들을 망각한다. (중략)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정보까지 늘어놓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편이 아니다.'


'결혼 :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이런 문장들이 좋았다. 사랑에 대한 낭만주의적 시각을 넘어 현실을 결합한 것이 좋다. 특히 '사랑을 치유한다'는 표현이 좋다. 나의 지난 사랑도 치유해아하는 질병 같았기 때문이다. 더 알아가는 것을 포기했고 그래서 치유하지 못했던 질병.


하지만 소설이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다. 남편이 부인에게 '당신이 지루해서 싫다'는 시비를 거는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헛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저자가 <결혼숙려캠프>에서 강의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강의만 신경을 쓴 것인가 싶었다. 남편의 외도와 시비 이후 부인의 참교육이 이어지면서 소설은 주제의식을 숨김없이 줄줄이 강의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너무 좋은 문장들이 많고, 기억해야 할 문장을 갖춘 소설인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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