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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엄마

by 혜솔

잘도 먹는구나!

얘야, 여기가 어딘데 퍼질러 앉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잘도 밀어 넣는 거니?

그만 일어나 가자

꿈속에서 몇 번이고 야멸차게 거부했던 동행,

따라가 볼까 하는 순간엔 가슴이 오그라들며 꿈에서 깨곤 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공항의 푸드코트에 앉았다

빈속을 채우기 위해 국수그릇을 잡고 있던 오후

머리를 숙인 채 젓가락질만 하던 나와

제 갈 길 가느라 바쁘기만 한 사람들 사이에

은밀한 무늬가 일렁인다

고단한 순례가 끝나기 전

지친 몸과 마음이 불러온 허기진 몽상이었을까

그만 됐다

얼른 일어나 가자

길을 재촉하는 소리가

유리지붕으로 내려앉는 그림자와 겹친다

눈을 감지 않았다, 까슬까슬 내미는 손이 스친듯하다

고개를 숙인 채 먹던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애써 외면한 것은 어디쯤 있는지 어느새 해는 지는가 보다


안녕히...

눈을 들지 않은 채 인사를 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서둘러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나서야

일어설 힘이 솟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살러 갈게요

내민 손 잡아줄 손등 위로 바람이 분다

더 이상 동행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 내 그림자를 밟은 채 아슬아슬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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