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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Nov 10. 2019

04. 인생도 9호선도 줄을 잘 서야 한다.

9호선 의자뺏기 게임에서 이기는 필승 전략!


사실 나는 이공계 출신의 (나름) 고학력자이다. 매사 분석하기를 즐기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능력을 “9호선에서 앉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에 사용하였고, 내 나름대로 최적의 방법을 발굴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을 분석하여 찾은 (아무도 원하지 않고 다소 모양 빠지는) 꿀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주의: 출퇴근 시에는 오직 출발역인 “김포공항역”만 가능하다. 다른 역에서는 앉아가기를 깔끔하게 포기하자.


어디에 줄을 서야 앉아갈 수 있나?


인생도 그렇지만 9호선에서도 일단 줄을 잘 서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줄이 제일 짧은 곳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더 앞쪽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빠른 환승은 포기해야 한다. 9호선에서 빠른 환승까지 고려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빠른 환승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 게다가 빠른 환승이 가능한 칸은 더 붐빈다. 나는 출발역인 김포공항에서 타기 때문에 앉아 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다음 역에서 타는 사람은 그런 희망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타는 곳이 빠른 환승을 하는 칸이니 말 그대로 “헬모드”를 플레이하고 싶지 않으면 빠른 환승이 가능한 칸은 피하는 게 좋다.


같은 조건이면 최대한 열차의 가운데에 줄을 서는 것이 좋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문 오른쪽]이나 [세 번째 문 왼쪽]에 서는 것이 그나마 경쟁이 덜하다. 양 끝에는 노약자석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의자 수가 더 적고, 경쟁이 더 치열하다.


그 마저도 동일한 조건이면, 앞사람에게 바짝 붙어있는 사람, 즉 좀 더 적극적이고(?) 전투력이 강해 보이는(?) 사람, 뒤에 가서 서는 것이 좋다. 이게 의외로 진짜 중요한데, 9호선에서는 앞사람이 꾸물거리고 느릿느릿하면 그날은 못 앉는다고 봐야 한다.



일단 뛰어.



일단 열차가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전운이 감돈다. 핸드폰을 하고 있던 사람도, 책을 보고 있던 사람도 일단 멈추고 스크린 도어가 열리기만을 째려보고 있다. 문이 열리자마자 순발력 있게 뛰어들어가야 한다.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의자로 전력 질주한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순식간에 게임이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가려진다.


이때가 중요하다. 빠른 상황 판단으로 빈자리를 노려야 한다. 빠르게 스캔한 후 일단 목표를 정했으면 주저 없이 달려가 앉아야 한다. 약간이라도 주저하다가는 의자뺏기 게임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경험상 출입문 맞은편보다는 출입문쪽이 덜 붐빈다.



게임에서 졌다면?



의자뺏기 게임에서 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몇 사람은 곧바로 내린다. 서서 가느니 차라리 다음 열차를 타서 앉아가려는 것이다. (내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그만큼 서서 가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려서 다음 열차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그나마 안락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지하철 연결부위가 의외로 안락하다며 거기로 가서 자리를 잡기도 하는데, 나의 경우는 최대한 출입문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편이다. 출입문에 가까울수록 더 많이 짓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딱히 올려놓을 물건이 없더라도 선반이 있는 쪽에 서 있는 게 좋다. 선반이 있으면 사람들이 백팩이나 노트북 가방을 거기에 올려놓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백팩에 고꾸라지는 일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전 글 참고)


  




+에필로그

처음에는 고작 자리에 앉아가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자괴감은 “지하철 어플”을 보면서 금방 극복하였다. 지하철 어플을 보면 “빠른 환승을 위해서” 몇 번 칸에서 내려야 하는지 나온다. (예를 들어 3-2번 칸에서 내리면 빠른 환승을 할 수 있다든가 하는)  고작 몇 미터 덜 걷게 해 주기 위해서, 출중한 개발자들이 어플에 이런 기능도 탑재하는 시대가 아닌가? 


9호선에서 앉아가는 문제는 ‘삶의 질’과 ‘업무 능력’을 좌우하는, 하루의 첫 단추이므로 빠른 환승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이다.


 ....고 합리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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