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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Nov 12. 2019

06. 9호선 뉴비

누가 짜증 소리를 내었는가, 누가 짜증 소리를 내었어!



사실,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것은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그저 고생길일 뿐이다. 하지만, 솔직히, 정말 소올직히 말하면 해병대나 특전사같이 (군알못 여자입니다) 가끔 으스대기에 만만한 이야깃거리인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렇게 빡센 부대에 있었소 하는 것처럼! 내가 시집살이를 이렇게 독하게 했소 하는 것처럼! 내가 이렇게 힘들게 출퇴근하오! 하며 일명 “9호선 부심” 부리는 데에 사용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한 김에 본격적으로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에 빙의해서 “9호선은 말이야~”하며 이야기를 좀 해 보자면  


9호선 처음 타는 뉴비는
확실히 티가 난다.


뉴비: 뉴비(newbie, newb, noob, n00b)는 풋내기, 새로 온 사람, 어떤 직업에 대한 무경험자를 지칭하는 신조어이다.(출처: 위키피디아)


이전 글에서 말했던 9호선 베테랑, 일명 9호선 고행자들과 차이가 확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방지게도, 나는 9호선 뉴비를 보며 가끔 서울에서 갓 상경한 시골쥐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긴 나무 막대기 끝에 봇짐 꾸러미를 달고 다니는 약간은 어리바리한, 이솝우화 “시골쥐와 서울쥐”의 그 시골쥐 말이다. 


급행이 6칸이고 완행은 4칸인 것을 몰라서 당황하거나, 승강장의 엄청난 인파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일 때에도 영락없이 시골쥐 같지만, 꼭 대놓고 어리바리하지 않아도 뉴비들은 “전투력”에서 티가 난다.


예를 들자면 뉴비들은 열차를 기다릴 때에도 확실히 덜 전투적이다. 모름지기 프로페셔널한 9호선 출퇴근러는 앞사람과 바짝 붙는 것이 미덕이거늘, 앞사람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여유로운 폼에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열차에 탈 때도 마찬가지이다. 빈자리까지의 전력 질주는 기본 중에 기본이거늘, 뉴비들은 마실이라도 나왔는지 “걸.어.서!” 열차를 탄다. (가끔은 좀비떼같은 9호선 베테랑 무리에게 밀려 들어간다. )


이렇게 여유로운 뉴비의 뒤에 줄을 섰다가는 나까지 못 앉기 마련이지만, 그런 일로 뉴비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모르는 아저씨 가랑이에 서서 왔던 첫날, 이전 글 참고)


다만, 뉴비들이 미워지는 때는 고요한 9호선을 짜증과 비명으로 오염시켜 버릴 때이다.


고요한 9호선, 엔진 소리와 안내방송의 낭랑한 성우 목소리만이 평화로이 맴도는 9호선에, “악! 밀지 마세요!” “아이C 밀지좀 마요!”하며 온갖 짜증 서리를 내며 고요를 찢는 짜증 소리가 난다면 십중팔구 뉴비이다.


특히나 나중에 내릴 때 “빨리”내리려고 출입문 가까이에 자리를 잡는 뉴비들이 있는데, 이건 최악의 판단이다. 열차 출입문은 헬 오브 더 헬, 지옥 중의 지옥이므로 멀어지는 게 좋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뉴비는 문이 열릴 때마다 중공군(중국 공산당 군대. 연령대가 드러나는 표현이다.)처럼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짓눌리며, 또다시 짜증을 낼 뿐이다.


아직 9호선 급행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이런 지옥 같은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 그러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실, 아침부터 짜증 내며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다. 그나마 요즘은 모든 급행열차가 6량이고 열차도 자주 다녀서 그렇지 예전엔 더했었단 말이다!!!!.




... “라떼는 말이야~”에서 시작해서 “예전엔 더했었어!!!”까지 쓰고 나니 꼰대 역할에 너무 과하게 몰입했나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인간에게는 짜증 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9호선은 항상 짜증 낼 만한 상황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


당장 어쩔 수 없는 상황이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 9호선 베테랑들과

충분히 짜증낼만 한 상황에 짜증 내는 9호선 뉴비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 판단은 지극히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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