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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로chaaro Nov 17. 2019

08. 9호선 vs 2호선

이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그날도 '9호선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시시콜콜 하소연하던 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 지인이 슬며시 말했다.


출근길에는 2호선도 9호선 못지않아요.


그 당시에는 "그렇군요" 하고 넘겼었다. 원래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내가 겪는 고통이 항상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9호선이 더 힘들다. 나는 일의 특성상, 한 달에 두세 번은 2호선 강남역으로 출근한다. 물론, 내가 모든 시간대에 열차를 타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9호선이 더 힘들다.


고통의 결이 다르다고나 할까?



특히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치이는 것에서는 9호선이 확실히 더 고통스럽다. 사람들이 좀 더 포악하다고나 할까? 더 이상 한 사람도 더 탈 수 없을 것 같은 만원 열차에 꾸욱 하고 눌러서 타는 쪽은 9호선이다. 마치 전경의 방패를 밀어내는 시위대처럼 죽기 살기로 미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진짜 너무 절박하게 밀더라. 그래서인지 옆사람에게 짓눌리는 것도 9호선이 훨씬 더 심하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어찌나 눌러대는지 내장이 목구멍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진짜 심했을 때에는 도움닫기를 하여 어깨빵을 하며 타는 것도 보았다. 반면 2호선은 사람이 꽉 차서 더 이상은 무리다 싶으면 9호선보다는 빨리 포기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이게 다 9호선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9호선은 다음 열차가 좀 한산할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 물론 2호선도 붐빈다고는 하지만 가끔 운이 좋으면 확실히 살만한(!) 열차가 오기도 한다. 다음 열차도 5분 안으로 오기 때문에 너무 붐빈다 싶으면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9호선은 다음 열차도 5분 이상 걸린다.) 게다가 9호선은 길이가 짧은 꼬꼬마 열차이기 때문에 덜 붐비는 칸이란 없다. 전부다! 모든 칸이! 열차 연결부까지도! 미어터진다. 그나마 2호선은 확실히 숨 쉴만한(!) 칸이 있다.


9호선이 2호선보다 그나마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완행" 열차의 존재이다. 완행열차를 타면 어느 정도의 한산함이 보장된다. 비록 시간은 두 배나 더 걸려서 아침에 잠이 부족하다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 생겨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2호선은 이러한 선택지가 없으니 속절없이 끼어가야 한다는 점은 확실히 힘들다. 그리고 2호선보다는 노후 열차가 많지 않아서 연착이 좀 덜된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사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더는 못쓰겠다. 2호선도 만만찮게 힘들다는 지인에 말에, 둘 다 겪어본 입장으로서 약간은 욱하는 마음에(?) 생각을 해 보고 글을 쓰기는 했지만 9호선과 2호선을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2호선보다 9호선을 훨씬 더 많이 타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신도림역을 못 겪어본 상태이니 2호선을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9호선이 힘드네, 2호선이 힘드네 하는 것 자체가 못난 행동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쓰다 보니, 2호선 출퇴근러도 나의 동지같이 느껴져서, 그들의 고통을 폄훼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냥 이공계 출신답게 이렇게 마무리해야겠다.



x호선 출근러들 모두 힘 냅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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