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아로chaaro Nov 04. 2019

01. 9호선 타고 출퇴근합니다

<프롤로그>


신은 바로 여기, “대한민국에” 지옥을 만들었다. 어디에 만들었냐 하면은 [출퇴근길 9호선]에 만들었다. 그리고 9호선은 신의 뜻대로 “지옥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정말이지, “지옥철”은 고리타분하면서도 완벽한 단어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출퇴근길 9호선은 실제로 존재하는 지옥이기 때문이다. 9호선이 지옥이라는 증거는 “비명”이다. 지옥이라면 응당 죄 많은 인간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겠지. 지금도 저쪽 한편에서 “악! 엄뫄야! 밀지마세욧!” 하는 어떤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지금 출근길 9호선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9호선에 “앉아서” 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자. )


이쯤 되면 왜 에덴동산이 좋았는지 알 것도 같다. 에덴동산이 천국 같았던 이유는 젖과 꿀이 흐르기 때문이 아니라 “출퇴근을 안 해도 되며, 인구 밀도도 낮았기 때문”이다. 그 넓은 섬에 아담과 이브 둘만 살면서, 어슬렁어슬렁 산책이나 다녔으니 천국 같았겠지.




이렇게 불만에 가득 차 구시렁거리는 나는, 올해로 2년 차 9호선 출퇴근러*이다.


* 출퇴근러: 출근과 퇴근을 하는 사람. 영어에서 er을 붙이면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것처럼 출근+퇴근+er 의 형태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비슷하게 만들어진 단어로 프로 불편러(프로페셔널하게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 참견러(참견하는 사람) 등이 있다


그리고 2년 동안 9호선으로 출퇴근을 한 결론은 “이 고통을 널리 알리고 싶다! 어딘가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고통을 알린다고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게다가 대책 없는 징징거림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해결책 없는 비판은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해결책이라고는 전혀 없는 순도 100퍼센트의 불평불만이요 구구절절한 하소연일 뿐임 밝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결책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여기에 징징거리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소연이라도 들어달라 읍소할 수밖에.


어쩌면 당신은 “오버하기는... 무슨 지하철 좀 붐비는 것을 가지고 지옥 씩이나”하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그랬다면 나는 당신이 “행운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비교적 덜 붐비는 열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걸어서 출퇴근하는 진정한 승리자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당신이 “출퇴근길 9호선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9호선이 지옥임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겪어보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은 “9호선만 지옥철이냐? 출퇴근 시간에는 2호선도 지옥철이다!”라고 말하는 “2호선 출퇴근러”인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생각을 한다면, 나는 황희정승처럼 그 말도 맞다고 동의해 주고 싶다. 군대 생활이랑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부대 중에서 내가 전역한 부대가 제일 빡센(!) 부대이니까. 그런고로 제일 힘든 열차는 내가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열차일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맞습니다. 9호선이 지옥이라는 말은 100% 사실입니다.” 하며 나의 말에 격하게 공감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나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면 당신은....... 바로 9호선 출퇴근러! 나의 9호선 동지임이 분명하다. 힘드시죠? 저도 다 압니다. 그래도 우리 힘냅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9호선이 그 정도인가? 하긴 9호선 힘들다고 하더라” 하고 반신반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위에 언급한 모든 종류의 사람을 위해서 썼다. 


-<이 글을 꼭 읽어야 하시는 분>-

9호선 출퇴근러: 동지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x호선 출퇴근러, 만원 버스 출퇴근러 : 난 그래도 9호선 출퇴근러보다는 낫지 하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가용 출퇴근러: 미지의 세계(대중교통 출퇴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도보 출퇴근러: 인생의 승리자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취준생: 앞으로 겪을 지옥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 신에게 고합니다.


신이시여!

인간의 세계에는 “학점 인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 학교나 타과에서 비슷한 과목을 들으면, 그 과목은 수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솔직히 우리가 인생을 좀 잘못 살아서 지옥에 간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아니 신적으로) 지옥 하나쯤은 면제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미 현세에서 못지않은 지옥을 경험했단 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