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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통

by 남쪽맑은물 Mar 22. 2025

  이마를 덮는다. 한쪽 눈을 덮는다. 가슴이 뛴다. 다른 쪽 눈도 덮는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코와 입을 덮는다.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이제 앞을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눈을 뜨면 진득진득한 물체가 눈에 들어가고 입을 벌리면 입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다 둑이 무너지듯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이곳에 처음 온다. 음악이 흐르는 것이 마음에 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바이올린 울림이 나를 달리게 하고 멈추게도 하며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그토록 질투했던 살리에리 표정이 떠오르고 살리에리와 결코 맞수가 될 수 없던 모차르트 얼굴을 그려본다. 천부적 능력을 소유한 모차르트의 천진함과 철없고 격식 없는, 어리고 여린 웃음을 생각하며 침대에 눕는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몇몇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치며 음악은 일관성 없는 생각일지라도, 이리저리 튕겨 나간 마음일지라도 차분하게 만드는 마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사지 재료가 얼굴에 붓칠 될 때, 깜짝 놀란다. 놀람은 긴장으로 확장하면서 어딘가에 숨어 있던 두려움을 끌어들인다. 차가운 감촉과 더불어 눈과 입 그리고 코를 다 막아버린 가면 형상. 하필이면 무절제한 생활로 가난한 말년을 장식했던 모차르트의 안타까운 삶이 떠오를 때,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 몹시도 궁핍한 모차르트가 생각날 때,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 다.

  마사지를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피부가 좋아지기는 하나, 영양분 좋은 재료이기는 한가 등등 퉁퉁거리는 마음이 멈추지 않는다. 이따위 마사지는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고 싶으나 입이 막혀버렸으니 그럴 수가 없다. 손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려 지만 제대로 전달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마사지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이미 마음은 해가 들지 않는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기 시작하 먹물처럼 깊은 불안한 마음의 부력은 편안한 마음의 중력을 넘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으니.

    

  눈을 감는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보고 싶은 마음과 그리움이 커서 눈을 감고 사랑한다는 말이 모자라 눈을 감는다. 긴 기다림으로 눈을 감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눈을 감는다. 떠나는 뒷모습이 보기 힘들어 눈을 고 옛날이 부끄러워서, 아픈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눈을 감는다. 순수한 것을 본 대가로 눈을 감고 오염된 것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는다. 신의 존재를 피할 수 없거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몸짓으로도 눈을 감는다. 이런저런 눈을 감던 이유를 생각하니 깜깜한 눈 뒤에 있던 불안한 형상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난리를 피운다. 감추고 싶던 회오의 흔적들, 뚜렷하지 않은 분노로 이성이 흔들렸던 순간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을 감아야 했던 억울한 기억들이 윙윙거린다.

  자의적으로 눈을 감던 일은 내 선택이고 내 감정이고 내 표현이었다. 나의 언어였고 말로 표현하지 않은 그 이상의 대화였다. 그러나 타협 없이 볼 권리와 말할 권리를 박탈하는 이유를 막혀 있는 입으로는 물을 수가 다. 눈에 밀착된 물체는 칠흑 같은 어두운 상황을 만들고 눅눅하고 축축한 암흑을 헤매게 다. 잠시 눈을 떴다가 감을 수도 다.  

    

  삶이란 조용히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을 때, 압력으로 짓눌려 오는 어둠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또 다른 공포를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이윽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혼란스러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태가 있지 않은가. 이처럼 일관성과 비슷한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가슴이 떨려오는 느낌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가.  

  왜 하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절박한 삶이 떠오를까.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시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이, 기다려도 안 되는 , 기다리기만 하면 더욱 힘들어지는 삶이 생각날까. 그래도 삶은 지나가지만, 기다리기 전에 준비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권리를 박탈당한 상황에서 이런저런 궁리가 얼마나 막막한지, 질곡의 순간들이 왜 그리도 질기게 아른거릴까. 

  셈을 할 수 없는 허무가 밀려온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내가 뱉은 말이 허공을 맴돌면서 나를 조롱하는 것 같다. 검증할 수 있거나 증명할 수 있는 실체가 없는데도 그동안 분무기처럼 허공에 뿌려진 말이 추궁하듯이 신경을 옥죈다. 모양새 나는 대화를 위해 단편 지식과 정보 모으기에 급급했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장황하고 과장을 일삼던 행동 떠오른다. 사실보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들, 듣기보다 말하기에 공들였던 일들이 생각난다. 듣는 일에 마음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민만 했던 일, 그러다 타인에게서 이유를 찾던 일들. 나에게 너그러운 해결책, 촘촘하게 나를 방어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눈 코 입이 막힌 속수무책 상황이 되니 저절로 고해성사하는 마음이 다.    

      

  묵연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말할 수 없고 볼 수 없으나 들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 섬세한 청각이 감지덕지다. 바이올린 선율이 이리 고마울 수가. 아름다운 현악기의 신비가 춤을 다. 내 귀는 맑아지고 심장박동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스트링 시어리(String Theory), 만물의 최소 단위는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줄)이라는 물리 이론이 공명통에서 증명되고 있다. 바이올린의 좋은 소리는 공명통에서 나기 때문이다. 줄의 움직임이 공명통에 신호를 보내고 텅 빈 통 속에서 제각각의 소리가 아름다운 운율이 되는 것. 그 소리가 통 밖으로 나와 무한한 시공간을 날아다니는 것.

  섬세한 연주는 몸통에서 몇 바퀴 휘돌다 내 귀청을 때리고 마음으로 스며들고 내면 깊숙이 파고든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바이올린 선율에 내 의식은 점점 무엇과 무엇을 분별하기 힘든, 아련함에 빠져든다. 굳이 보려고 애쓰는 것이 미련한 일이다. 보이지 않아서 아렴풋하게 느껴지는 울림으로 불안한 마음이 느슨해지고 너저분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눈으로 보고 쌓아 놓은 현상에 대한 집착과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모아 두었던 허위의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마무리해 드릴게요.” 순식간에 팩이 벗겨진다. 형광등 불빛이 감긴 눈을 뚫고 나를 녹여 주고 있다. 영화 속 모차르트처럼 꾸미지 않은 웃음이 내 입가에 조물조물 모여든다.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진실하고 밝은 소리가 들리고 실체가 보인다고 했던가. 터져버릴 것 같던 심장 박동은 이미 제자리를 찾아 수수하고 질서 정연한 마음이 다. 불안한 형상들은 내 마음 울림통에서 사라진다. 편안한 마음이 나를 포옹한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박동이 바이올린 선율과 리듬을 다.  

  익숙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규칙적이고 비슷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이,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는 일들이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분한 날이 있으면 상냥한 날도 있으니까. 만족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는 자족한 날도 있으니까. 전혀 본 기억이 없는 꽃이 불쑥 나타나 눈앞에서 하늘거리는 날도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하다가 문득, 자기가 자기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파문을 인식하는 날도 있으니까.  

  무수한 에너지가 모여 아름다운 우주를 이루는 것처럼, 세상에 떠도는 오만가지 생각과 말이 진동하는 끈이 되어 마음의 공명통을 울릴 것이다.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아름다운 소리는 세상 모든 만물에 공평하고 은은하게 퍼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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