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심리학 레시피 1
조직문화팀 김 팀장은 계속 상무님의 눈치를 보고 있다. 자신이 올린 기획안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하신다.
일주일 전 상무님은 애자일(Agile) 조직문화를 우리 회사에 도입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검토를 하라고 지시했다.
처음 IT업종에서 빠른 의사결정과 조직문화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애자일 문화가 이제는 그 효과성이 높아져 전 업종에 확대되어가는 추세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에 김 팀장은 팀원 최 과장에게 상무님의 검토 지시를 설명하고 기안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최 과장은 이런저런 자료의 검색과 현재 애자일 조직문화를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유사기업의 조직문화 팀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하고 인맥을 동원해 자료를 받아서 열심히 초안을 작성했다. 이를 토대로 몇 차례 회의를 거쳐서 우리 회사도 충분히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의 검토서를 완성했다.
“ 이거.. 최 과장이 기획한 거지?”
“ 네. 맞습니다.”
“ 우리와 유사한 기업 30여 곳을 조사한 결과 25개 회사가 애자일 조직문화 도입 이후 전년대비 매출과 직원의 조직만족도가 높아졌다. 그래서 우리 회사도 도입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군. 혹시 최 과장이 이렇게 결론을 내서 왔을 때 자네는 무슨 질문을 했나?”
갑작스러운 상무님의 질문에 김 팀장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자신은 팀장으로서 최 과장의 검토서에 부족함이 없도록 여러 질문을 통해 보완했다.
“네.. 검토서에 반영한 것처럼.. 30개 기업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가?, 도입한 시기와 그 이유, 직원 만족도 조사의 실질적 근거 등을 물어봤고요..
매출과 만족도는 상승했지만 그밖에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나머지 5개 회사는 왜 애자일 조직문화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우리 회사가 이 사례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을 질문하고 함께 검토했습니다.”
이 말을 듣던 상무님은 조용히 검토서를 돌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김 팀장! 아직 팀장 된 지 얼마 안돼서 팀원이 일을 하면 거기에 어떤 기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스스로 어떤 질문을 제대로 못했는가를 확인해서 다시 작성해 와!”
A사건과 B결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사건으로 인하여 B결과가 발생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과학적 사고에 의하면 4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① A 사건이 발생했을 때 B 결과가 나온 경우
② A 사건이 발생 안 했는데 B 결과가 나온 경우,
③ A 사건이 발생했는데 B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경우,
④ 마지막으로 A 사건도 발생 안 했고, B 결과도 나오지 않은 경우..
이 네 가지를 확인해야 이를 토대로 논리를 펼칠 수 있다.
최 과장이 작성한 기안서는 위의 네 가지 중에서 ①과 ③에 대해서는 검토가 되었지만 ②,④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이 되어있지 않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애자일 조직문화를 도입하지 않은 유사기업의 매출과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가 어떤가를 질문했어야 했고, 여기서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매출과 직원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내용이 확인되어야 근거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중학교 수학 시간 혹은 국어시간에 논리를 배울 때 기본적으로 배우는 이 사안을 실제 우리 업무에서는 자주 빼먹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팀장들이 김 팀장처럼 현실에 애자일 조직문화를 도입한 기업의 증거는 열심히 찾지만 그 문화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돌아가신 할머니는 예전에 항상 허리가 쑤시면 비가 오려나 보다 라면서 마당에 빨래 널려있는 것을 빨리 걷어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정말로 저녁에 비가 왔다. 나도 두어 번 신기하다고 생각한 기억이 있다.
직장생활 2년 차 시절, 우리 팀 장대리님은 자신이 팀장님 험담을 하면 항상 팀장님이 나타나 깜짝 놀란다면서 항상 팀장님 뒷담화를 할때는 내게 뒤쪽에 누가 오는지 안오는지 잘 감시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할머니의 허리 쑤시는 것과 비, 장대리님의 팀장님 뒷담화와 팀장님의 등장은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할머니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시고도 꽤 오랫동안 통증 때문에 고생 하셨다. 할머니 허리통증이 있던 날 중 아마 어떤 날은 비가 오고, 어떤 날은 비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 기억 속에는 주로 비가 온 날이 남아있고, 비가 오지 않은 날은 사라져 있다.
장대리님은 내가 알기로는 항상 팀장님의 뒷담화를 하셨다. 팀장님 뿐 아니라 모든 상사의 뒷담화를 너무 잘해서 나는 항상 누가 들을까 두근거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대리님의 뒷담화는 안들키고 아주 잘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몇 번 대리님이 팀장님 뒷담화를 할 때 갑자기 팀장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냐면서 나타나신 적이 있다. 이때 정말 모두 깜짝 놀라 황급히 각자 흩어졌던 기억이 난다.
대리님은 아마 몇 번 팀장님이 나타나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경험한 것을 주로 기억한다. 비가 온 것을 보았던 기억, 그리고 팀장님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던 경험을 기억한다. 그리고 허리는 쑤셨지만 비가 오지 않았던, 뒷담화를 했지만 팀장님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나지 않아 그 사실을 무시하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 명쾌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내려서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하루에 수십개의 치킨집이 폐업 하지만 옆 자리에 또 다른 치킨집이 계속 생기는 것은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것 만 기억하고, 그렇게 해도 성공하지 못한 많은 사례가 무시되어 잘못된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과 성공 스토리를 읽은 독자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러한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만 그러한 방법을 사용했음에도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묻혀서 잊히기에 아예 없는 사실로 오해되어 의사결정에 고려되지 않는 까닭이다.
상무님은 김 팀장이 작성한 검토서에 매우 흡족했다.
“ 음.. 수고했어.. 이번 임원 회의 때 이 검토서로 제안하면 될 것 같아...
이제 김 팀장이 좀 뭘 질문해야 할 것을 아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상무님”
“ 김 팀장! 내가 팀장이 된 이후 팀원이나 후배들이 업무를 가져와서 보고를 하면 그걸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게 있어,.. 바로 지금 저 친구가 내게 말 안 한 게 뭘까? 뭘 빼먹었을까? 난 이 질문부터 시작해.. 이게 내 일하는 방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