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한민국
작은 화면 속,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맞을까? 같은 이름, 비슷한 얼굴. 나는 화면 속 프로필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와 조금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걸까, 아니면 애초에 다른 사람인 걸까. 혹시 실수라면 어쩌지? 그가 아니라면, 이 팔로우 요청은 그저 엉뚱한 누군가에게 도착한 불필요한 행위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마음속에서는 수십 가지의 감정이 뒤섞였다. 내가 괜한 실례를 범하는 건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가던 그때,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팔로우 요청 승인됨.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이렇게나 빨리? 다시 화면을 확인했다. 분명, 그가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는 팔로우 요청을 수락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습관적인 행동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저 랜덤한 팔로워라 생각하고 무심코 승인버튼을 눌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을 더듬으며, 기억 저편에서 오래전 익숙했던 언어를 꺼내기 시작했다. 손끝이 천천히 자판 위를 움직였다.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고르며 그에게 보낼 첫 메세지를 만들었다.
한서 박 (14:00, 2월 4일)
- Buenas tardes. 갑작스럽게 메시지를 보내서 죄송해요. 저는 한서라고 합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볼리비아에서 2년동안 살았어요. 사실 이 어플을 사용하다가 우연히 당신의 계정을 발견했어요. 혹시 당신도 볼리비아에서 일하지 않으셨나요? 낯익은 이름과 얼굴이 보여서 연락을 드렸어요. 제 착각이었다면 그냥 잊어주세요. 어쨌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나는 내가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답장은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준 아마노 (14:13, 2월 4일)
- 안녕, 한서. 잘 지냈니?
잊히지 않은 기억들이 다시 천천히 떠올랐다. 3년 전, 볼리비아의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밤공기,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곳에서의 이야기들이 기억 저편에서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는 볼리비아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2018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 후 2년을 페루에서 보냈고, 작년 6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일본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준 아마노 (14:13, 2월 4일)
- ....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아. 긴급사태가 선포된 후 거리에는 사람도 거의 없어. 가족들도, 너도 괜찮길 바라.
그는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곧 나아질 거라고 덧붙였다. 그의 메시지는 담담했지만 그 너머로 왠지 지친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긴 글의 마지막 줄,
준 아마노 (14:13, 2월 4일)
- ....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만나자.
그 글을 읽는 순간,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다.
'다시 만나자.'
너무도 가벼운 인사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던진 마지막 한마디였다. 반가움과 그리움이 손가락 끝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생각할 틈도 없이,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한서 박 (14:30, 2월 4일)
- 안녕. 네가 아닐까 봐 걱정했는데, 정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나는 네가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 해, 2019년에 사마이파타를 여행했었어. 정말 아름다운 곳이더라. 한국으로 돌아온 후 1년 동안 쉬면서 취업 준비를 했어. 그리고 작년에 새 직장을 구해서 지금은 서울에서 일하고 있어. 한국도 팬데믹 상황이 정말 최악이야. 얼른 상황이 나아져서 어디에서든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잠시 손을 멈췄다. 그가 머물렀던 사마이파타. 나는 그곳을 걸으며 혹시라도 우연히 그를 마주칠 수 있을까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여행 내내 마음 한편에는 어쩌면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사마이파타에 갔다는 걸 알면 어떨까. 그가 일했던 곳을 방문했다고 말하는 게 괜찮을까.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것이 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때의 순간들이 내게 소중했다는 걸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혹시라도 내 감정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버린 건 아닐까.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동안 수많은 감정이 스쳐 갔다. 걱정이 쌓이고 망설임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여러 번 쓰고 지우고 읽고 또 읽는 것을 반복한 끝에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아주 찰나 마음이 시끄러웠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고요해졌다. 문득 그의 프로필을 눌렀다.
'마케팅 트레이니. '
볼리비아에서 일할 때도 그가 회사에서 원했던 직무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또 잠시 고민하다가 짧은 메시지를 추가해서 보냈다.
한서 박 (14:34, 2월 4일)
-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자. 잘 지내.
막상 보내고 나니 온갖 걱정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불안함을 덮어버릴 만큼 반가운 감정이 더 컸다.
나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마 답장이 오기 전까지 이 작은 화면을 몇 번이고 더 들여다볼 것 같아 결국 휴대폰을 책상 끝으로 밀어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올 것 같은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빛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