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한민국
온종일 흩어졌던 정신을 맥주 한 캔에 담아 조용히 눌러 앉히고 싶은 저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조명을 어둡게 낮추고, 부엌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채 간단한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어딘가 어수선한 테이블 위를 빠르게 정리한 뒤 두꺼운 책을 여러개 쌓은 후 스마트폰을 그 앞에 세웠다.
그와 약속한 시간이 되어 LINE앱에 들어가 통화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먼저 영상이 걸려왔다.
그는 얇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화면에 나타났고, 약간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개구장이 같은 그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잠시 휴대폰을 어딘가에 고정하고 나를 보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리곤 다시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손을 흔들다가 화면에서 사라진 그를 향해 말했다.
"뭐해?"
"아, 나 카레 만들고있어! 잠깐만 기다려, 잠깐만! 1분만! 나 좀 기다려줘!"
조금 먼 거리에서 대답하는 듯, 그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는 그런 그에게 알겠다고 하고 웃으며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다시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그는 휴대폰 화면 속에 있는 나를 카레가 담뿍 담긴 그릇이 보이는 식탁 위로 데리고갔다. 그 옆에는 편의점에서 사 왔다는, 시원하게 물방울이 맺힌 캔맥주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찌개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머금은 뒤, 손에 들린 잔을 천천히 들어 올렸고, 그는 화면 저편에서 따라 올린 캔을 조용히 나의 잔에 맞대는 시늉을 했다. “건배,” 누군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둘 다 동시에 내뱉은 짧은 인사말은 이미 몇 주째 반복해온 우리만의 작고 조용한 의식 같았다.
대화는 어느때 처럼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느슨하게 흘렀다. 나는 회사에 새로 들어온 후배에 대해 짧게 푸념하듯 말했고 그 동안 그는 밥을 먹으며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두 번째 캔을 열며 그가 입을 열었다.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코파카바나 언덕 올라갔던 날 기억나?”
맥주를 천천히 넘기고 있던 나는 순간 손끝을 멈췄고, 그의 말이 어디로 흘러갈지 가늠하지 못한 채 조용히 시선을 화면 속 그의 눈에 고정시켰다.
“사실, 그 날 이후에 몇 달 뒤에 혼자 다시 간 적 있었거든. 노을지는 호수 너머 하늘을 뚫어지게 보다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까지 보고 왔었어. 우리 같이 갔을 땐 노을지는 것만 봤었잖아. 별이 어찌나 많던지, 같이 봤어야했는데.”
그는 그 말을 하면서 가끔씩 휴대폰 화면 너머로 두었는데 그 눈빛은 지금보다 훨씬 멀고 고요한 어떤 시간을 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의 말에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아주 조금 끄덕였다. 볼리비아에서 마지막으로 그와 만나 여행을 갔던 곳이 코파카바나였다. 그가 혼자 코파카바나에 다시 갔었다는걸 몰랐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는 화면 속 그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대답 없는 화면 속 나를 보다가 그는 다시 맥주잔을 들어 한국어로 '건배'를 외쳤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고, 우리는 아무런 강제도 없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일들, 그가 페루 지사에서 일하면서 큰 지진을 만났을 때 일어났던 일들까지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여러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그는 페루에서 일본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몇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했다. 항로가 막히기 직전에 다행이 일본정부에서 보내준 항공기에 탑승할 수있었고, 페루에서 살 던 집에서 본인의 옷가지 몇개만 챙기고 서둘러 귀국했다고 했다. 6개월이 넘게 지난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짐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도 했다. 나와 그는 일본의 코로나 상황에 정부가 대처하는 방법과 한국 정부의 대처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는 시간동안, 두 사람의 화면 앞에 놓인 맥주는 이미 여러 캔이 비워져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휴대폰 시계는 어느 덧 새벽 1시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에서 감자칩을 꺼내와 작은 그릇에 담았고, 그는 조용히 일어나 창가로 가 밖을 보여주며 말했다.
“비 와. 지금 여긴 계속 이래.”
나는 얼른 거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서울의 밤은 맑고 조용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긴 바람만 불어.”
“같은 시간인데, 다른 날씨네.”
그는 창밖을 보며 웃었다.
“같은 시간, 다른 도시인데 이렇게 같이 있는 거 되게 이상하지 않아?”
"그러니까. 신기하지."
새벽 2시 반이 넘어가자 그는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무릎 위에 담요를 올렸다. 나는 바닥에 앉아 무릎을 세운 채 스마트폰 화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의 눈꺼풀이 조금씩 내려앉는 걸 보면서, 내게도 어느새 졸음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지만 그가 먼저 끝내자는 말만 하지 않는다면 이 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이렇게 오래 얘기한 거, 진짜 오랜만이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어느 정도는 졸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끝의 말처럼 들렸다.
"그러게. 이제 자러가자. 많이 졸려보여."
“으응... 그럴까? 졸리긴 해. 하하."
"하하, 그래."
"잘자고 또 보자. 오늘도 재밌었어.”
나는 그 말에 짧게 숨을 들이쉬고, 조금 늦게 대답했다.
“잘 자. ”
그렇게 그 날의 통화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