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즈, 볼리비아
차창 너머로는 붉은 빛이 산허리를 감싸며 흘렀고, 멀리 일리마니의 봉우리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은근한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잠긴 산을 바라보는 그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말이 없던 그는, 어딘가 멀리 마음을 두고 있는 듯했다. 들어오는 바람에 스치는 머리칼, 굳게 다문 입술, 길게 뻗은 눈매. 그 표정에서 무슨 이야기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저 산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같은 버스 안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그의 마음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가볍지 않은 불안이 차올랐다. 그것은 내가 놓치고 있는 신호 같기도, 지금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잃게 될까 두려운 예감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게 기뻤다. 창밖의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질수록 내 안의 감정은 차오르고 겹쳐져,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옆모습을 다시 바라보았다. 불안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그런 마음조차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과 기쁨이 한자리에 맞부딪히는 사이, 나는 이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소포카치에서 깔라꼬또로 내려오는 그 길은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집 근처 산미겔 성당 앞에서 나와 그가 함께 내렸다. 가로등 불빛은 깜박이며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고,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의 여운은 아직 귓가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도시는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속삭이는 듯했다. 그 때, 비둘기 떼가 머리 위로 흩날리자 길거리 개들이 무심히 지나쳤다. 짖음이 퍼져 나가며 한순간 골목이 요란스러워졌지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이어갔다.
성당 근처에 다다르자, 안티꾸초 굽는 냄새가 밤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달큰하고 고소한 연기가 코끝을 스치자 잠시 멈추고 싶다는 유혹이 스쳤지만, 그의 눈빛과 무언의 기색이 우리를 계속 걸어가게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뒤따랐다. 아이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은 채 동그랗게 눈을 떴고, 장사를 접던 노파는 우리를 흘끗 바라보다 이내 손을 다시 움직였다. 경계라기보다 동양인을 보는 알 수 없는 호기심에 가까운 시선들이었지만, 우리는 모른 척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걸음 사이로 그의 손등이 내 손끝을 스칠 듯 말 듯 닿았다. 잡히지 않은 간격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껴졌고, 그 미묘한 거리감이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는 가끔 발걸음을 늦춰 내 속도에 맞췄고, 그 작은 배려가 말보다 크게 다가왔다.
집 앞에 다다르자, 가로등 불빛이 문에 부서져 희미하게 번졌다. 웅크리고 있던 개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다가, 이내 무심히 골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둘 사이의 조용한 정적뿐이었다.
그는 숨을 한번 고르고 나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조심스럽게 달싹였다가 멈추고, 다시 망설이길 반복했다.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내일… 주말이잖아.”
짧은 문장이 어둠 속에서 길게 흘러내렸다. 이어서 그는 숨을 고르고, 오랫동안 담아 둔 듯한 용기를 꺼내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같이 코파카바나에 갈래?”
뜻밖의 제안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코파카바나?”
“응. 예전에도 말했잖아. 언젠가 같이 가자고.”
그의 말은 서툴게 꺼내는 듯하면서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준비되어 있던 문장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함께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지만, 아직 우리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면 성급해지고 싶지 않았다.
“좋아.”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 가면서 연락할게."
"응. 데려다줘서 고마워."
짧게 손을 흔든 그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아직 놀란 마음은 잔잔한 파문처럼 남아 있었지만, 내일 그와 함께 호수를 마주할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은 두근거렸다.
집 안에 들어서자, 정적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현관에 기대어 핸드폰 화면을 켰다. 그 순간 울린 알림음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내일 버스 몇 시에 타면 좋을까?”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이내 대화창엔 ‘escribiendo…’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 짧은 시간마저 내 심장 박동이 방 안 가득 울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의 답이 도착했다.
“La Paz 터미널에서 코파카바나 가는 첫차가 7시래. 도착은 11시쯤. 괜찮아?”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좋아. 7시전까지 센트로 터미널에서 보자.”
파란색 체크 표시가 하나에서 둘로 바뀌더니, 곧 다시 알림음이 울렸다.
“알겠어. 고마워. 내일 보자.”
짧은 인사였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발자국처럼 느껴졌다. 방 안을 채운 정적 속에서 그 문장은 작은 불빛처럼 은근한 안도감을 남겼고, 나는 그 빛에 오래도록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