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2021년 7월)

서울, 대한민국

by 한서



델타 변이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서울과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아래 놓여 있었다. 저녁 모임은 제한되었고, 백신 접종은 진행중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 미접종 상태였다. 지인을 만나려면 허락된 시간과 장소를 골라야 하는, 혼란의 시대에 여전히 놓여있었다. 그런 시기였다. 서로가 서로를 조심하던 그런 시기였다. 한국에서도 지인을 만나기가 힘들었기에 비대면 소통 방식이 삶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던 소통 방식으로 일본에 살고 있는 그와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서로의 매일 아침,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로 하루를 시작했고 점심시간엔 서로의 음식을 찍어보냈고 퇴근길엔 노을이 스민 하늘 한 장면을 나눴다. 어느 날 아침엔 우산을 두고 나와 비를 맞고 있다는 투정을 했고, 그는 회사 근처 라멘집에서 찍은 뜨거운 국물 사진을 보내기도 했으며 나는 김치찌개가 궁금하다는 그의 말에 도시락 뚜껑을 얼른 열고 급히 사진을 찍어 보낸적도 있었다. 별것 아닌 일상의 조각들이었지만 그 작은 파편들이 이어져 나의 하루는, 조금은 덜 허전하게 채워졌다. 그렇게 하루에 오가는 몇 줄의 메세지들은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고된 하루 속에 살고 있는 나를 붙잡아 주는 작은 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일과 끝에 현관문을 열고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정적 속으로 들어서면 나는 불을 켜고 소파에 앉아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그의 말들을 다시 훑어보곤 했다.웃으면서 보낸 이모티콘들, 흐릿한 음식 사진, 가벼운 농담 하나까지도 내 곁에 머무는 듯했다가 금새 사라지고 큰 공허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주중엔 메세지로 그를 만났다면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작은 화면 속에서 마주하곤 했다. 와 새벽까지 이어지는 대화를 끝내고 잠에 들면, 일요일 아침에는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혹여 다음 토요일엔 그와 대화를 나누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면, 불안이 마음속에 피어올라 순간적인 우울까지 나를 덮치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약속 하나 없는 일요일 아침, 나는 아침부터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넣었다. 물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기계음은 규칙적이었지만 집 안은 오히려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거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은 바닥을 따뜻하게 덮고 있었다. 나는 그 빛 위에 책을 펼쳤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금새 흩어지고, 페이지는 그대로 멈춰 있기를 반복했다. 책장 위로 번지는 햇빛, 창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왠지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의 풍경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져 소파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평온한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척'했다. 왠지 모를 불안함은 이 날도 떨쳐내기 어려웠다.


'징-'

그 때, 휴대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 앉아 책상 위에 얹어져있던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그였다.

준 아마노 (16:10, 7월 11일)
- 안녕, 한서야. 뭐해?

나는 바닥에 깔려있던 카펫 위에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려 앉았다. 그의 메세지를 읽자마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휘몰아치던 불안감도 다시 잔잔해졌다. 나는 손 끝을 빠르게 움직였다.

한서 박 (16:11, 7월 11일)
- 안녕. 날씨가 좋아서 오랜만에 집안일 했어.
준 아마노 (16:13, 7월 11일)
- 한국도 날이 좋구나. 여기도 날이 좋아. 나는 부모님 댁에 와서 주변 산책 나왔어.

그리고 그는 이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그가 걷고 있는 풍경 사진이었다.

준 아마노 (16:15, 7월 11일)
- 하늘 예쁘지?

그의 시선으로 찍은 사진 속 풍경은 고요하면서도 맑았다. 낮게 드리운 산자락이 강 너머로 이어지고 그 아래로는 작은 집들이 붙어있었다. 잔잔한 강물 위로 햇빛이 흩어져 반짝였고, 하늘에는 먹구름과 흰 구름, 푸른 틈새가 뒤섞여 있었다. 왼편으로는 좁은 도로가 길게 뻗어 있었는데 누구 하나 없는 그 길 위엔 바람 소리와 그의 발자국 소리만 있어보였다.

한서 박 (16:16, 7월 11일)
- 풍경이 너무 예쁘다. 사진 보내줘서 고마워.
준 아마노 (16:17, 7월 11일)
- 별말씀을. 오늘은 약속 없어?
한서 박 (16:17, 7월 11일)
- 없어, 오늘은 혼자 쉬고 싶었어.

내가 답장을 보냈고, 그는 읽었지만 답은 바로 오진 않았다. 아마 열심히 걸어 집으로 향하고 있겠지, 좋은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고 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기다렸지만 가끔 이런 순간이 오면 답답하고 서운함이 스며들었다. 우린 대체 무슨 사이지? 진지한 사이가 아님에도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내가 싫었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 나는 결국 휴대폰을 책상위에 멀리 밀어두고, 애써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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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