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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Dec 25. 2016

일상의 무너짐은 천천히 다가온다.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내다보면, 문득  일상이 사라진  같은 기분이  때가 있다. 아마 대개의 경우는 착각이 아닐 것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주객전도가 되어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느낌이  ,  종일을 바깥에서 보내고 저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깥에서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잦아질 , 그래서 녹초가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서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면 어느새 저녁 8시는 가뿐히 넘어 있어,  다시 다음 날을 준비 해야  .


이런 시기에 친구들에게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 삶이 사라진 생활, 내 일상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 하나같이 동감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가끔, 누군가는 이런 삶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더라.


그러니까 자기가 할 업무를 시간 내에 제대로 했어야지. 그걸 못해서 야근을 하니까 그렇게 되지." 하고.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농땡이 혹은 능력부족으로 보는 시선을 느끼면  서글프다. 개개인의 사정과 그들의 업무환경을 알지는 못하겠으나, 누군들  생활 없이 밤낮으로 일하는  좋아서 그러는 것일까 싶고.


그런데 더욱 서글픈 것은 이러한 문제를 저항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때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저녁이 없어진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지인들을  때도 그렇고 말도 안되는 업무량에 대해 분개하던  역시도 어느 순간 당연한 일처럼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아무렇지 않아졌단  느꼈을  정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됨과 동시에 어쩌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나, 하고 서글퍼 졌다.


몇 번 저런 경험을 겪고서, 느꼈다.



일상의 무너짐은 천천히 다가온다.

라는 것을.


한두번이던 것들이 잦아지면, 본래 자신이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을 이용해 하던 '행위'들에 대해 잊게 된다. 그것들이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가령 스케쥴러를 쓰고 다음  혹은 주말의 계획을 짜는 일이나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 드라마를 보거나 잡지를 읽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주 작은 사소한 행위들을 잊게 되어, 어느새 그것들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길어봤자 1~2시간을 투자하는 것인데. 아니, 사실은 출퇴근 시간까지 모두 합하면 반나절 이상을 '나의 일상' 아닌, ''이라는 행위에 투자를 하고 돌아온 나만의 시간인데 남은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써도 문제가 없을 시간인데 어째서  시간들을 '사치' 여겨야 하나 싶어진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어렸을 적 부터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 봐왔던 자신의 삶에서 '일상'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워커홀릭들은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이라 여겼다. 저런 사람들은 일이 너무 좋아서 자신의 생활을 어느정도 포기하고, 일을 즐기는 거구나, 하고 그렇게 나와는 관계가 없을 일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주 천천히,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그게 '습관'과 '생활'로 변해버려, 그렇게 조금씩 '날 위한' 일상은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고착화되어버리면, 그게 그의 '일상'이 되는 것임을 실감했다.



어디에선가 읽고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다.


끊임없이 나를 살피고, 발견하고,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서는 일상의 결을 다듬어야 한다.


 구절은 일상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던 글에서 보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일상의 결을 다듬는다는 것이 취향의 문제 뿐만 아니라 생존의 영역, 혹은 삶의 의미라는 영역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일상이 무너져내리지 않게, 단단한 바운더리 안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일상의 결을 다듬는 작업을 해나가야겠다고 그런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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