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대장증후군 식단 | 저포드맵 식단
"이건 뭐야?"
"시금치."
"이게 시금치야? 시금치 맛이 안 나는데. 이렇게 만들면 애들도 잘 먹겠다. 집에서 만들어줘야겠어."
"이거 진짜 간단해."
작년에 아기를 낳은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제 한 살 된 아이와 함께!
주변에 아이가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실제로 아이를 볼 일은 없어서 내 세계에서 아기는 2D로만 존재했다. 아기 사진을 보고 ‘귀엽다’는 말만 연신 할 때는 그 작은 손으로 무엇을 집을 수 있는지, 그 작은 입으로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위와 장으로 곱게 갈린 이유식만 소화시킬 수 있는 줄 알았다.
“얘는 그냥 계란밥도 좋아해.”
레인지 2구를 모두 돌리고 오븐까지 사용하며 요리를 하고 있는 내게 넌지시 친구가 얘기했다. 친구는 그렇게 공들여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의에서 한 말이었지만 나는 당황했다. 아이가 먹을 음식은 안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첫 만남에 맨 밥에 계란만 비벼서 줄 수는 없어서 고민하다가 '시금치 계란 볶음밥'이 생각났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저포드맵 식단을 먹으면서 제일 까다로운 건 '채소'이다. 상식적으로 밭에서 수확하는 초록색은 다 몸에 좋을 것 같지만, 과민성 대장증후군에겐 상성이 맞지 않는 채소들도 많다. 흔히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마늘, 양파, 버섯, 아스파라거스도 모두 고포드맵 음식이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받기 전엔 양파 넣은 카레나 버섯 리조또를 자주 해 먹었기 때문에 대체할 야채가 필요했다. 그 와중에 발견했던 음식이 '베이컨 시금치 카레 우동'이었다. '시금치'라고 하면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오던 시금치 무침만 알다가,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 후엔 시금치를 넣어 카레를 만들어 먹다가 이제는 거의 모든 볶음밥에 넣어 먹는다. 사실 볶음밥이라는 게 그냥 있는 재료 넣고 볶으면 되는 건데, 거기서 야채의 자리가 비어 보일 때 시금치가 딱이다. 특히 시금치와 계란의 궁합은 뽀로로와 크롱처럼 단짝 친구같다!
<1인분 준비물>
계란 한 개 (약 400원, 재량껏 여러 개 더 풀어도 상관없다.)
밥 한 공기 (햇반 기준 700원, 나는 보통 밥을 한 번에 많이 해서 한 공기씩 얼려둔다.)
시금치 작은 한 줌 (약 500원, 1 1/2컵 혹은 75g까지가 저포드맵이다.)
오리고기 조금 (약 500원, 베이컨이나 다른 고기류로 대체해도 상관없다.)
참기름 한 숟갈
굴소스 한 숟갈
간장 한 숟갈
다 해봐야 3,000원이 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레시피는 음식물 쓰레기도 계란 껍질 밖에 안 나오니 돈 없고 귀찮은 자취생에게도 딱이다.
1. 기름을 넉넉히 프라이팬에 두른다. (이때, 참기름 한 숟갈을 함께 넣으면 고소한 냄새가 난다.)
2. 얼린 밥 혹은 햇반을 해동시킨다.
3. 오리고기와 시금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다듬는다.
4. 프라이팬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프라이팬 가까이 손을 갖다 대었을 때 열기가 뜨거우면 계란 푼 것을 넣는다.
5. 강한 불에서 젓가락으로 빠르게 휘저으며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준다.
6. 스크램블 에그 형태가 되면 중불로 줄여주고 다듬은 시금치와 오리고기를 넣어준다.
7. 해동시킨 밥도 넣어준다.
8. 굴소스 한 숟가락, 간장 한 숟갈을 넣어주고 골고루 비벼준다.
9. 강불에서 지지듯이 놔두면 밑면이 바삭해져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아이 밥을 만들 땐, 현미밥(고포드맵)을 사용하고 베이컨과 시금치는 더 잘게 썰어서 작은 입에도 한 입에 삼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실, 아이는 잘 먹지 않았다. 아이에겐 밥 먹는 것보다 재밌고 신기한 게 훨씬 많았다. 아이는 나의 작은 방을 끝에서 끝까지 짧은 다리로 잘도 걸어 다녔고, 친구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다. 친구가 식탁에 앉았을 땐 밥은 이미 차게 식어 있었다. 그래도 친구는 아이에게 보란 듯이 맛있게 먹었다.
"너 안 먹으면 엄마가 다 먹을 거야."
아이는 대꾸도 없이 크롱 인형을 갖고 노는 데 열중했다.
"너라도 잘 먹어서 다행이네."
연신 맛있다며 먹는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아니, 진짜 맛있어. 쟤도 지금 평소보다 훨씬 잘 먹은 거야."
이 글의 제목은 친구의 말을 증언 삼아 지었다.
+번외.
이건 남은 시금치와 남은 고기로 만들어 먹은 볶음밥이다. 계란은 남은 게 없어서 패스. 고기를 굽다가 시금치를 넣고 밥을 넣고 굴소스 한 숟갈, 간장 한 숟갈을 넣어서 볶으면 끝. 시금치 계란 볶음밥처럼 음식물쓰레기도 없다. 내가 다 먹었기 때문에. ^_^ 맨 왼쪽 사진의 작은 초록색은 와사비가 아니라 시금치 꼬투리이다. 시금치 꼬투리는 단 맛을 내기 때문에 버리지 말고 함께 요리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다들 정말 한 번만 해 먹었으면 좋겠다. 굴소스가 감칠맛을 내고, 간장이 간을 잡아주고, 각기 다른 식감인 쌀과 고기와 시금치가 조화롭게 입 속에서 어우러진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