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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04. 2021

몸에 좋은 시금치, 아이랑 맛있게 먹는 법

과민성대장증후군 식단 | 저포드맵 식단

"이건 뭐야?"

"시금치."

"이게 시금치야? 시금치 맛이 안 나는데. 이렇게 만들면 애들도 잘 먹겠다. 집에서 만들어줘야겠어."

"이거 진짜 간단해."


작년에 아기를 낳은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제 한 살 된 아이와 함께!

주변에 아이가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실제로 아이를 볼 일은 없어서 내 세계에서 아기는 2D로만 존재했다. 아기 사진을 보고 ‘귀엽다’는 말만 연신 할 때는 그 작은 손으로 무엇을 집을 수 있는지, 그 작은 입으로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위와 장으로 곱게 갈린 이유식만 소화시킬 수 있는 줄 알았다.

“얘는 그냥 계란밥도 좋아해.”

레인지 2구를 모두 돌리고 오븐까지 사용하며 요리를 하고 있는 내게 넌지시 친구가 얘기했다. 친구는 그렇게 공들여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의에서 한 말이었지만 나는 당황했다. 아이가 먹을 음식은 안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첫 만남에 맨 밥에 계란만 비벼서 줄 수는 없어서 고민하다가 '시금치 계란 볶음밥'이 생각났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저포드맵 식단을 먹으면서 제일 까다로운 건 '채소'이다. 상식적으로 밭에서 수확하는 초록색은 다 몸에 좋을 것 같지만, 과민성 대장증후군에겐 상성이 맞지 않는 채소들도 많다. 흔히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마늘, 양파, 버섯, 아스파라거스도 모두 고포드맵 음식이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받기 전엔 양파 넣은 카레나 버섯 리조또를 자주 해 먹었기 때문에 대체할 야채가 필요했다. 그 와중에 발견했던 음식이 '베이컨 시금치 카레 우동'이었다. '시금치'라고 하면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오던 시금치 무침만 알다가,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 후엔 시금치를 넣어 카레를 만들어 먹다가 이제는 거의 모든 볶음밥에 넣어 먹는다. 사실 볶음밥이라는 게 그냥 있는 재료 넣고 볶으면 되는 건데, 거기서 야채의 자리가 비어 보일 때 시금치가 이다. 특히 시금치와 계란의 궁합은 뽀로로와 크롱처럼 단짝 친구같다!


<1인분 준비물>

계란 한 개 (약 400원, 재량껏 여러 개 더 풀어도 상관없다.)

밥 한 공기 (햇반 기준 700원, 나는 보통 밥을 한 번에 많이 해서 한 공기씩 얼려둔다.)

시금치 작은 한 줌 (약 500원, 1 1/2컵 혹은 75g까지가 저포드맵이다.)

오리고기 조금 (약 500원, 베이컨이나 다른 고기류로 대체해도 상관없다.)

참기름 한 숟갈

굴소스 한 숟갈

간장 한 숟갈

다 해봐야 3,000원이 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레시피는 음식물 쓰레기도 계란 껍질 밖에 안 나오니 돈 없고 귀찮은 자취생에게도 딱이다.

 


1. 기름을 넉넉히 프라이팬에 두른다. (이때, 참기름 한 숟갈을 함께 넣으면 고소한 냄새가 난다.)

2. 얼린 밥 혹은 햇반을 해동시킨다.

3. 오리고기와 시금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다듬는다.

4. 프라이팬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프라이팬 가까이 손을 갖다 대었을 때 열기가 뜨거우면 계란 푼 것을 넣는다.

5. 강한 불에서 젓가락으로 빠르게 휘저으며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준다.

6. 스크램블 에그 형태가 되면 중불로 줄여주고 다듬은 시금치와 오리고기를 넣어준다.

7. 해동시킨 밥도 넣어준다.

8. 굴소스 한 숟가락, 간장 한 숟갈을 넣어주고 골고루 비벼준다.

9. 강불에서 지지듯이 놔두면 밑면이 바삭해져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번 브런치 글을 위해서 다시 만든 시금치 계란 볶음밥. 정말 맛있다.
친구와 아이랑 함께 먹은 점심. 왼쪽부터 가지 라자냐, 시금치 계란 볶음밥, 바질 파스타.


아이 밥을 만들 땐, 현미밥(고포드맵)을 사용하고 베이컨과 시금치는 더 잘게 썰어서 작은 입에도 한 입에 삼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실, 아이는 잘 먹지 않았다. 아이에겐 밥 먹는 것보다 재밌고 신기한 게 훨씬 많았다. 아이는 나의 작은 방을 끝에서 끝까지 짧은 다리로 잘도 걸어 다녔고, 친구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다. 친구가 식탁에 앉았을 땐 밥은 이미 차게 식어 있었다. 그래도 친구는 아이에게 보란 듯이 맛있게 먹었다.

"너 안 먹으면 엄마가 다 먹을 거야."

아이는 대꾸도 없이 크롱 인형을 갖고 노는 데 열중했다.

"너라도 잘 먹어서 다행이네."

연신 맛있다며 먹는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아니, 진짜 맛있어. 쟤도 지금 평소보다 훨씬 잘 먹은 거야."

이 글의 제목은 친구의 말을 증언 삼아 지었다.


+번외.

두둥탁!

이건 남은 시금치와 남은 고기로 만들어 먹은 볶음밥이다. 계란은 남은 게 없어서 패스. 고기를 굽다가 시금치를 넣고 밥을 넣고 굴소스 한 숟갈, 간장 한 숟갈을 넣어서 볶으면 끝. 시금치 계란 볶음밥처럼 음식물쓰레기도 없다. 내가 다 먹었기 때문에. ^_^ 맨 왼쪽 사진의 작은 초록색은 와사비가 아니라 시금치 꼬투리이다. 시금치 꼬투리는 단 맛을 내기 때문에 버리지 말고 함께 요리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다들 정말 한 번만 해 먹었으면 좋겠다. 굴소스가 감칠맛을 내고, 간장이 간을 잡아주고, 각기 다른 식감인 쌀과 고기와 시금치가 조화롭게 입 속에서 어우러진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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