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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위장

by 은수달 Apr 08. 2023


"수달님 빵이 너무 적습니다... 조금만 더 드셔주세요..."

"위장이 소심해서... 외면하네요."


주말 아침, 배꼽시계를 달래기 위해 식빵을 굽고 셀러리도 잘게 썰고, 그릭 요구르트에 꿀과 시리얼을 뿌린 뒤 어느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러자 세팅이 예쁘다는 둥, 맛있겠다는 둥의 댓글이 올라왔다. 그중에서도 식빵이 적다는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위장은 평균 성인보다 많이 작은 편이다. 조금만 과식하거나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여지없이 탈이 나고, 조미료나 특정 식재료에 민감해서 외식하면 세 번 중 한 번은 소화불량을 각오해야 한다.


알쓰에 맵찔이라 고를 수 있는 외식 메뉴는 더욱 한정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간만 잘 맞으면 못 먹는 음식이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찾는 미식가이지만, 조금씩 적게 먹어서 살이 덜 찐다는 장점도 있다. 한때 건강염려증이 생겨서 가공식품을 엄격히 제한한 적 있다. 그러다 가끔 생각나서 먹으면 여지없이 탈이 났다.

'너무 안 먹어서 면역이 떨어진 건가?'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일부러(?) 가공식품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몸도 빠르게 적응했고, 과식만 하지 않으면 무사히 넘어갔다.


어릴 적엔 입이 짧다며 엄마한테 잔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까다로운 입맛이 음식을 제대로 즐기고 맛을 구분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거기다 카페인에 둔감한 편이라 밤늦게 마셔도 거의 영향이 없다. 신은 내게 소심한 위장과 함께 남다른 미각도 같이 준 건 아닐까.


아무튼 오랜만에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기며 오감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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