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그림자를 데리고 살았다. 나도 '너'도 각자의 그림자를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43년 만에 완성된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시에 현대인의 고뇌와 욕망을 독특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너나 나나 그전까지는 이렇게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자기 기분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터놓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20)
진짜 너는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안에 있다. (14)
1부에서 주인공은 소녀를 통해 진짜 '너'를 만날 수 있는 도시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도시는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어서 들어가기 무척 힘들지만, 진심으로 원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소년은 솔직하게 감정과 생각을 털어 넣을 수 있는 상대라고 소녀를 여긴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둘만의 특별한 비밀 세계를 만든다.
열은 내 몸을 물집으로 뒤덮으며 어둡고 긴 꿈으로 잠을 채우게 했다. 구역질이 파도처럼 단속적으로 밀려왔지만 속이 메스꺼울 뿐 실제로 토하지는 않았다.
벽에 대한 꿈도 꾸었다. 꿈속에서 벽은 시시각각 살아서 움직였다. 마치 거대한 장기의 내벽처럼. (95)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과 호기심은 때로 거부감이나 불안을 불러온다. 살아 움직이는 벽처럼 예상하지 못한 난관은 수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눈앞에 평온하고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강은 내가 도시에서 늘 보던 것과 다르다. 마지막 굽이를 돈 지점에서 강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고 순식간에 진청색으로 바뀌어, 마치 먹이를 삼킨 뱀처럼 커다랗게 부풀어서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145)
웅덩이가 내뱉는 거대한 숨결이 주위를 지배하는 것처럼, 무의식 혹은 지하 세계는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발목을 붙잡는다. 문명 이전에는 삶의 목적이나 방향이 뚜렷했던 반면, 문명의 세계는 혼돈의 소용돌이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 소용돌이에 빨려가는 대신 벽 바깥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신은 나와 다시 한번 하나가 되어 벽 바깥의 세계로 돌아가야 해요. 내가 그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보기엔 저쪽이야말로 진짜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고생하며 나이 들고 쇠약해져 죽어가요. 시간은 멈출 수 없고, 죽은 것은 영원히 죽은 겁니다." (153)
변화를 꿈꾸며 그림자와 하나가 되길 원했던 소년은 그림자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길 요구받는다. 그리고 기적이나 행운을 바라던 그는 소녀와 연락이 닿지 않아 답답해한다.
만약 네가 나를 정말로 원한다면, 나를 정말로 필요로 한다면, 이 정도 거리는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도쿄에 가는 쪽을 선택한다. (169)
소녀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던 그는 모든 단서를 잃고 외톨이가 된다. 또 다른 미래를 꿈꾸던 자아는 단절된 세계 앞에서 절망하고, 고독의 세계에 남겨지게 된다.
"아무리 단단히 갇혀 있어도 존재 자체가 위협이니까요. 그것들이 어떤 계기로 힘을 얻어 일제히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그게 이 도시의 잠재적 공포가 아닐까.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의 힘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싶은 겁니다." (179)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새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성장통 혹은 긍정적인 의미라면, 하루키 소설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은 마주하기조차 두려운 '잠재적 공포'이다.
시공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며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와 무언가가 뒤섞인다. 경계의 일부가 무너지고, 혹은 모호해지고, 현실이 여기저기서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 혼란이 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초래한 것인지, 아니면 고야스 씨가 초래한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325)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연상시키는 위의 구절은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손목시계가 고야스 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벽에 둘러싸인 도시의 광장에 있던 시계탑(문자반은 있지만 바늘은 없는)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때론 눈앞의 현실을 보고서도 믿기지 않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판단이 흐릿해지며, 모든 것이 뒤섞여버린다.
"그 도시에 들어가려면 그림자를 버리고 두 눈에 상처를 내야 해. 그 두 가지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조건이야. 떨어져 나간 그림자는 머지않아 목숨을 잃을 테고, 그림자가 죽으면 넌 다시는 그 도시에서 나올 수 없어. 그래도 상관없니?" (534)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방랑길을 떠난 것처럼, 소년 역시 그림자를 버리고 두 눈에 상처를 낼 것을 요구받는다. 여기서 '떨어져 나간 그림자'는 익숙한 자아 혹은 친숙한 일상을 상징하고, 소년이 들어가려는 도시는 '마음이 이어져 있는 세계'일 수도 있다.
소년은 이 현실 세계와 마음이 이어져 있지 않다. 임시로 매우던 기구 같은 존재. 지상에서 살짝 떠오른 상태로 살고 있다. (535)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우린 누구나 지상, 혹은 현실 세계에서 살짝 떨어진 상태로 살아가면서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를, 높은 벽 너머의 도시 혹은 세계로 들어가길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림자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려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실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