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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고기 Dec 25. 2016

태극기 휘날리며

리뷰-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입체감이 없구나

  대학가에 ‘안녕 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열풍이 풀었었다. 동아리방에서 한 친구가 역시 그 문구를 시작으로 대자보를 적고 있었다. 글씨가 삐뚤빼뚤했던 그 친구는 대신 글씨를 마져 적어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한 선배가 그 광경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너희 종북이니?’ 

 내 주변 사람들이 그 선배에 논리에 의하면 모두 ‘종북’으로 분류되었기에 그 선배가 그런 말을 쓰는 게 정말 신기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선배의 말이 한국 사회의 특이한 구조를 잘 반영해준다. 어떤 크고 작은 이슈든 그것이 장기화되면 아직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냉전 시대의 이념이 그것에 덧 입혀진다. 너무도 자명하게 유가족의 아픔과 그에 따른 보상이 논의될 줄 알았던 세월호 사건에서도 누군가 종북이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한국 전쟁이 우리 사회에 기억되는 방식은 그런 맥락에서 대표적인 예시이자 상징이다. 오랫동안 국가적인 차원에서 반공이데올로기는 한국 전쟁의 공통된 시각과 공유된 입장이라고 일컬어져왔다. 그것은 권력의 입장을 탄탄하기도 했으며 거의 관습화되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틀에서 이 영화가 한국 전쟁 속 개인의 비극 차원을 조명한 건 박수를 쳐 줄 일이다. 생각보다 잔인하게 그려지지 않은 북한군과 나중에는 동생이 죽은 줄 알고 다시 인민군에 가담한 형의 줄거리 때문에 국방부는 영화의 투자를 취소했다. 후에도 계속 ‘포화속으로’나 ‘연평해전’ 같은 이념의 MSG가 듬뿍 쳐진 영화가 다시 생산되는 걸 보면 이 영화의 시도가 정말 의의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에 왜 이렇게 정이 가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봤다. 영화는 기존 한국 전쟁 영화들과 다른 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비슷해서 나는 그 이야기가 새로웠는지 모르고 있었다. 전쟁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내게 아주 인상 깊게 남았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가 있다. 물론 두 영화가 다루는 전쟁은 형태, 성격, 시기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렇지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다룰 때 충분한 고뇌가 있다. 다양한 양가적 감정이 얽히고, 인간이란 개체의 본질을 서럽게 고민하게 된다. 또한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것 때문에 인물들을 등장하자마자 몇 초안에 머리가 날아가거나 배가 찢겨 내장이 덜렁거리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두 주인공 외에 허 중사나 영만, 용석 등 수많은 인물들이 낭비되는 느낌으로 죽는다. 전쟁터는 살점과 뇌수가 흥건한 볼거리로써만 단순하게 표현되었으며 그런 고뇌가 없다. 진태가 진석을 제대시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안타까움보다 승철의 배에 들끓었던 구더기만 계속 생각난다.

 밥을 먹고 있을 때, 막사 안에서 다친 전우를 보고 있을 때 폭탄은 그렇게 정적을 깨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온다. 인민군과의 전투는 흔히 그런 식으로 시작되며 누가 아군이고 적군이지도 구분되지 않는 아비규환으로 묘사된다. 어떤 평론가는 이 전투신이 조약하다고 비판했지만 내게는 진석의 감정이 전해져왔다. 학생에서 갑자기 군인이 되어 싸워야 하는 진석의 시점에서 그가 느끼는 혼란함과 매스꺼움, 끔찍함 등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전쟁 영화에서 유독 샷들의 정석이나 기준들이 많이 요구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전쟁 샷들은 왜 누군가의 감정이 담긴 시점 샷으로 표현될 수는 없는가라는 의문이 들게 해준 좋은 지점이었다.

 조금 신선한 내용물이 영화의 산업적 규격에 잘 포장되었지만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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