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또 한 명의 워킹맘이 출근한다

육아시간을 사수하라

by 심그미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출근이다.

이번 월요일부터는 지난주와 달라야 한다.

아침. 안 그래도 이미 쪼개 쓰던 시간인데, 더 잘게 쪼개야 한다. 이제 그 쪼개는 시간 속 작은 변수가 생기면 예전보다 더 큰 초조함이 느껴진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 전의 여유로움은 내가 안 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유라니! 그래, 어쨌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집을 한바탕 닦아낸 후-다른 집 아기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아기들은 먹다가 돌아다녀서 온 거실에 음식 부스러기를 뿌려 놓는다- 설거지도 하고, 각자의 가방에 식판과 기저귀도 챙겨 주고, 밤새 많은 일을 겪은 쑥대머리를 겨우 질끈 묶은 꼴로 9시가 다 되어서야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건 정말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우리 둘째는 겨우 13개월 살았다. 그 아기에게 알아서 양치를 해결하라고 칫솔을 하나 들려주고 내 얼굴을 벅벅 씻는다. 머리도 감아야 한다. 나는 극지성 피부라 머리를 감고 여섯 시간이 지나면 떡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머리 감지 않고 회사에 간다는 건 하늘이 두쪽 나도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내가 미리 일찍 일어난다면 어떨까? 일단 아이들보다 내가 일찍 일어난다는 게 아주 드문 일이고, 용케 내가 먼저 일어났다면 그날 아이들이 늦잠을 자는 것일 테다.

정말 드문 확률로 내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씻을 수 있는 날이라면? 너무 좋겠지! 내가 미리 씻어 깨끗해진 상태인데 아이들이 먹다 만 아침밥을 내게 던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다면.

그런저런 경우의 수와 가정을 뒤로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8시 15분까지는 너희들이 등원해야 해. 렇지 않으면 나의 9시 출근은 불가능해진다.


오늘따라 큰애가 양치하자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거실에서 놀기만 한다.

이럴 때 나는 가만히 작은애만 데리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신긴 후 큰애를 바라보며 말한다.

우린 갈게, 넌 집에서 놀아.

그제야 큰애가 저도 신발을 신겠다고 한다.

양치는 물론 세수도 안 한 꾀죄죄한 얼굴에, 밤새 찬 기저귀는 불룩하고, 내복 바람인 채로!

그래, 타협할게. 8시 20분! 그때까지 등원한다. 해 보자.


복직 일주일 전이 되자 아침이 매우 초조하다. 9시 출근을 사수하기 위하여, 아침 시간을 얼마나 더 앞당겨야 하고, 얼마나 더 쪼개 써야만 하는지를 생각한다. 육아는 생각을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생각한다. 이대로 출근할 수 있을까? 이렇게 출근해도 되는 걸까?

복직 일주일 전, 각각 35개월 13개월이 된 아기 두 명을 등원 준비시키고 430개월짜리인 나를 출근 준비시키는 연습을 5일간 해보았다. 어느 날은 모든 것이 순조로워 8시 20분에 성공적으로 등원시켰다. 아주 좋아. 겨우 말린 머리와 후줄근한 옷차림인 채로 유아용 웨건을 끌고 걸으며 다시 생각한다. 이대로 집에 가서 사무직다운 차림을 하고, 화장을 하고, 버스를 탄다면...

아니, 그래도 9시는 어려울 것 같다.

일찍 일어나 '사무직다운 차림'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그건 아침에 '사무직다운 옷' 한 벌을 의미 없이 세탁기에 집어넣겠다는 각오나 다름없다. 이제는 일의 순서를 바꿀 수 없다. 아이들의 등원을 챙긴 뒤 9시까지 출근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다섯 번의 '등원과 출근' 연습. 어느 날은 내가 시계를 흘끔 보니 분침이 40분에 가 있었다. 벌써? 어쩐지 오늘 내가 밥상을 너무 꼼꼼히 치웠어. 빨리! 빨리! 아이들을 채근하고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할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한 명씩 옷을 꿰어 입히고 신발을 신겼다.

"너네 이렇게 엄마를 안 도와주면 엄마가 어떻게 출근을 하겠니... 출근을 안 할 수도 없고. 어휴!"

유독 잔소리와 푸념을 길게 한 그날 아침, 집 밖을 나서니 공기가 유난히 시원하고, 시계는 7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웨건에 태워놓은 아이들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고. 선생님들은 지금쯤 한 두 분쯤 출근하는 중일까나?

갑작스럽게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하필 아이들을 심하게 채근한 오늘이, 이런 허탈한 실수를 한 날이라니. 동네를 20분 정도 돌다가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산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큰애가 우는 소리를 한다. 미안, 미안. 여러 가지로 엄마가 미안하다.


금요일 오후에는 사무실에 가서 미리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미리 전화로 언질 들은 대로 국장님 비서를 맡게 될 것이라, 국장님부터 과장님, 팀장님께 줄줄이 인사를 드릴 예정이다. 국장님 시간에 맞춰 1시 이후에 갈 것이었고, 마침 휴직 전에 같이 일하던 팀원께서 시간이 된다고 해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박사님은 나의 일과 육아를 응원해 주는 분이시고, 본인도 일과 육아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계에서 해내고 있는 분이다.

사실은, 어떻게 출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푹푹 쉬었더니 그분 역시 이제는 등원 도우미 없이 직접 아이들의 등교와 등원을 챙겨준 후 출근하신다고 한다. 임기제로 시청에서 근무하던 당시에는 아이들의 등교/등원, 하교/하원을 위해 알고 지내는 돌봄 선생님 3인을 '우리 가정을 위한 인력 pool'로 삼고 시간이 되는 분들마다 오시도록 했다고. 나 역시 정 박사님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일과 가정을 지키셨는지 알기 때문에 지금 새 직장에서 덜 힘들게 지내신다는 이야기가 반갑다.

"새 직장에 가면서는, 아예 말하고 시작했어요. 난 10시 전에 출근 못 한다고."

정 박사님은 본인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나에게도 힘주어 당부했다.

"주무관님은 잘리지도 않잖아요. 늦게 출근한다고 해요. 육아시간 써요. 처음부터 쓰고 시작해야 해요."


따끈한 국밥과 함께 박사님의 정신교육(!)을 받고 나니 나 역시 육아시간을 쓰겠다고 처음부터 말해도 되나, 하는 걱정은 옅어지고 그래, 출근을 늦게 한다고 말씀드리자,라는 각오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아이는 낳아 놓는다고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첫째를 낳기만 한 채 출근하고 야근하면서 나는 첫째와 모자지간이라고 부르기 서먹한 관계가 되어버릴 뻔했다. 그게 응어리가 되어 복직 후에는 일보다 가정을 우선하리라고, 반드시 육아시간을 지켜서 일 분 일 초라도 더 아이들 곁에 있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터에 갈 날이 되어 가니 자꾸만 고개를 드는 의심이 있다.

이래도 되나?

이래도... 되나?


처음 보는 사람들, 처음 가보는 층의 사무실. 익숙한 청사 속 낯설기만 한 이들과의 만남이라 긴장으로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국장님 앞에는 팀장님과, 서무님이 함께 앉았다. 국장님은 편하게 일하라며 이런저런 좋은 말을 해 주셨다.

"늦게 와도 괜찮아."

"예에.."

"9시에 와도 괜찮아."

아, 국장님 기준에 9시가 늦은 거라면 나는 아주 늦어야 하는데 큰일이다!

"9시 30분까지 와도 되겠습니까?"

"어? 어, 그래."

아이고, 해냈다!

다른 대화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국장님이 그래도 된다고 하신 것만 기억난다. 비서가 되어가지고, 국장님보다 늦게, 다른 직원들보다도 늦게 온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 박사님께 연락했다.

"해냈어요! 9시 30분에 출근하기로 했어요!"

정 박사님의 아낌없는 축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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