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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경 Aug 17. 2023

윤하나1

 윤하나


   윤하나는 올 초 급성심근경색으로 에크모 시술을 받았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심장 때문에 고생하다 가셨으니 따지고 볼 것도 없이 내력이었다. 심장질환 유병률이 높다는 소견을 받은 건 20여 년 전. 그땐 고작 30대 초반이었으나 윤하나는 의사의 말을 새겨듣고 일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건강검진을 받고, 쌀 대신 보리와 잡곡을 먹고, 매일 만 보 이상 걸었으며 취미로 수영과 라이딩을 하며 몸소 건강한 삶을 실천했다. 물론 예배도 빠지지 않았다. 독실한 가풍 덕에 윤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신앙과 가까웠다. 그녀는 매주 교회에서 한 주간 주의 어린양으로 참되게 살았음을 양심껏 고백했고, 때론 그러지 못했음을 회개했다. 만나는 누구에게나 선한 사람이고자 했으며 침대에 누워 하루 동안 내뱉었던 말들을 복기하며 누군가에게 상처 주진 않았는지, 좀 더 현명하게 굴 순 없었는지 반성한 뒤에야 눈을 감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러했듯 몸의 안과 밖 모두 건강하고 자애로운 주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녀를 오래 봐왔던 신도들은 입을 모아 윤하나의 신실함을 높이 칭찬했다. 그녀의 신실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하나, 윤하나 자신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윤하나는 자신이 행하는 믿음이 피부색이나 모질, 눈동자의 색처럼 날 때부터 정해지는 어떤 형질과 다름없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자의식을 인식한 순간부터 삶의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던 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삶이 지나치게 평온했기 때문이었다. 평균 이상의 안락한 삶.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족과 배우자. 건실한 직장과 건강한 육체. 물론 그 모든 것이 신의 귀애를 받아서 누리게 된 것이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떠오른 질문 하나가 믿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풍요의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이라면? 


   윤하나는 궁금했다. 단 한 번의 시련도 거치지 않은, 무결한 믿음이란 과연 진짜일까? 삶이 파탄이 난 뒤에도 여전히 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당신의 뜻에 의심 없이 복종할 수 있을까? ‘이후’의 믿음이야말로 당신이 바라는 진실성 있는 믿음이 아닐까?


   윤하나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즉, 시련을 은밀히 열망했다. 거대하고 파괴적이며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시련을. 진실로 울며 애원하고 붙들고 마침내 일어서는 경험을 통해 기꺼이 자신의 신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기만의 냄새를 씻을 수 없는 열망이었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외로운 자기 비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마침내’라고 해야 좋을까. 

   윤하나의 심장이 20여 년 전 예견된 일을 기어코 해내고 말았다. 제 기능을 중지함으로써 그녀의 남모를 열망을 이루어내고 만 것이다.


   윤하나는 커다란 두 손이 가슴을 잡아 벌려 찢어발기는 듯한 격심한 통증을 경험했다. 식사 준비 도중이었다. 버섯을 다듬느라 쥐고 있던 칼을 놓친 윤하나는 도마와 냄비를 요란하게 쓰러뜨리며 바닥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남편 오정규가 소란에 놀라 욕실에서 뛰쳐나왔다가 하얗게 질린 채 엎어져 있는 윤하나를 보고 곧장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5분 만에 도착했으나 윤하나는 그사이 의식을 잃었고 병원 앞에서 호흡이 멎었다. 구급대원이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수술실로 옮겨지는 동안 윤하나의 심장은 요동 없이 잠잠했다.


   그러나 두 시간에 걸친 에크모 시술 끝에 윤하나는 기적처럼 다시 깨어났다. 뭉근한 의식 속에서 윤하나는 빛의 장막을 따라 걸었다. 장막에 손을 뻗어 빛의 결을 만졌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근 듯 나른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건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운 감각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세상에 나올 때 느꼈던 태초의 감각. 빛의 장막 너머에서 누군가 윤하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부드럽지만 거역할 수 없이 완강한 힘이었다. 윤하나의 몸이 장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 장막이 걷히며 시야가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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