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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경 Aug 17. 2023

김두리1

  김두리


   휴게실에 남아 있던 3명의 레지던트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본 뒤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예상치 못한 놈의 위용을 확인하고선 저마다 탄성을 지른 뒤 그것을 예의껏 서로에게 양보했다. 몸에 좋은 건 알겠는데, 어쨌든 생물은 껄끄럽다는 데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커도 너무 컸으므로. 결국 백 교수의 말대로 제일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자라는 결혼을 3개월 앞둔 김두리에게 낙점되었다. 

   정력에 그렇게 좋다더라.

   동기가 상스럽게 손을 움직였고 모두가 기력 없이 웃었다.

   근데 정력이 뭐야? 

   있어 그런 게, 이 불쌍한 마법사 새끼야.

   동기들이 시시덕거리는 사이 김두리는 손가락 끝으로 자라 껍데기를 톡, 톡 건드렸다.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죽었나? 이걸 어떻게 하나. 건강원에 갖다주면 알아서 달여주나? 백 교수 이 사이코 같은 새끼. 줘도 꼭 처치 곤란한걸. 

   일단은 퇴근이 우선이었다. 당번을 바꾼 덕분에 갑자기 생긴 꿀 같은 휴식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특히나 약혼자인 이현정이 모르는 휴무는 귀했다. 김두리는 박유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가도 돼?

   빠르게 답신이 왔다. 

   마침 오늘 집 청소함. 밀린 빨래도 함. 입고 있던 속옷까지 죄다.      


   현관이 열리자마자 두 사람은 뒤엉켰다. 

   자기한테서 소독약 냄새나. 박유나가 말했다. 김두리는 박유나의 헐렁한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작고 말캉한 가슴이 저항 없이 손에 착 감겨 들어왔다. 방문 너머로 맹렬하게 덜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가 들렸다. 

   진짜 다 빨았어? 싹 다? 

   박유나가 그 질문이 우습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 두 사람은 세탁기 앞에 나란히 앉아 요플레를 까먹었다. 

   먹고 또 먹어. 그거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야.

   뭐야. 폐기 처리하려고 불렀구만.

   많이 사놨는데 안 오니까 그렇지. 

   안 오니까, 라는 말은 아무리 씩씩하게 발음해도 쓸쓸해지는 감이 있었다. 그것을 둘 다 느꼈다. 박유나는 계속 요플레를 먹는 척했고 김두리는 서둘러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을 씻어 재활용 박스에 던져 넣었다. 다시 옆에 앉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있는 것을 없는 척할 때마다 찾아오는 어떤 낭패감은 아무래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김두리는 냉장고에 머리를 기대고 삐뚤게 서서 집 안을 둘러봤다. 방 하나, 부엌 겸 거실, 세탁기가 겨우 들어가는 다용도실과 욕조 없는 욕실. 이 정도면 둘이 살기 딱 좋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준비는 잘 돼가? 

   이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세탁기에게 거는 말인 양 박유나가 말했다. 그래서 김두리는 기꺼이 세탁기가 되기로 했다. 눈을 감고 몸 안에서 몰아치는 거센 진동을 느꼈다. 웅웅. 웅…. 그러다 불쑥 도출된 세탁기다운 말. 

   잘될 것도, 안될 것도 없지.

   가끔 요플레 먹으러 와. 

   넌 더 좋은 데로 가.

   한때 함께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에 대해 얘기하던 사람에게 해선 안 될 말이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박유나는 고개를 숙였고 김두리는 옷을 꿰입었다.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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