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경 Aug 17. 2023

김두리2

김두리도 한때는 몸과 마음을 합체시킬 대상을 찾아 결혼하고야 마는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삶을 두 번쯤 살 수 있다면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김두리는 거울 앞에서 그러게 왜 진심이고 그래, 따위의 말을 연습하는 남자였다. 고작 사랑 때문에 지난하게 살기엔 가고 싶은 곳이 멀었다. 그런 점에서 이현정과는 대화가 잘 통했다. 맞선을 본 그날, 이현정은 연애를 전제로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개원 얘길 꺼낸 것은 두 번째 만남 때였다. 이현정은 김두리가 의사인 것보다, 김두리의 집안이 의사 집안인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솔직한 여자였다. 멀리 갈 수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김두리는 결국 연습한 말을 꺼내야 했다. 그러나 박유나는 왜 진심이고 그래, 따위의 말을 듣고도 김두리 곁에 남았다. 그의 곁에 남는 게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기로 한 사람처럼.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너는 대체 어디까지 감당할 작정일까. 김두리는 가끔 박유나가 두려웠다. 

 

 집까지 어떻게 운전해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와중에도 자라가 죽을까 봐 김두리는 아이스박스를 자주 돌아봤다. 뒷좌석에서 이따금 뽀드득하고 스티로폼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꼭 나 아직 여기 있다고,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김두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자라를 풀었다. 놈은 여전히 얼굴을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정이라도 들면 그게 더 곤란하니까. 김두리는 차마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겨우 요플레나 먹으러 오라고 하던 박유나의 등을, 정다우나 척박한 옛 연인의 집을 떠올렸다. 조금 전의 일인데도 한참 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다음 대사를 연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 김두리는 소파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연락도 없이 찾아온 이현정이 욕실에 갔다가 자라를 보고 기함을 토하는 바람에 토막잠에서 깨어났다. 김두리는 비몽사몽간에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다. 

   우리 엄마나 고아줄까?

   그새 자라의 효능을 검색해 본 이현정이 말했다.

   혈행 개선에 좋다네. 칼슘도 많고.

   김두리는 고민할 여지도 없이 동의했다. 과연 자라 같은 걸 먹을까 싶은 그 여자. 어딘가 맹금류를 닮은 장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두리의 표정을 읽었는지 이현정이 우리 엄마 그런 거 잘 먹어, 하고 말을 덧붙였다. 이현정은 핸드폰을 빠르게 두드리며 집 앞에서 저녁 장을 봐왔다는 투로 말했다.


   오늘 신혼집으로 세탁기 시켰어. 건조기랑 세트로. 그냥 내 맘에 드는 걸로 샀는데 괜찮지?

   김두리는 끄덕였다.

   세탁기는 그냥 세탁기니까.      

이전 05화 김두리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