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리는 조건에 딱 맞는 남자였다.
이현정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김두리를 찾아냈다. 김두리2, 김두리3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거였다. 이현정은 가벼운 마음으로 김두리에게 접근했다. 말이 안 통하면 어쩌나 했는데 김두리의 모친 쪽이 감사하게도 비즈니스에 눈이 밝았다. 골프 클럽에서 김두리의 모친과 안면을 튼 이현정의 모친이 직접 선을 주선했다.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김두리의 모친이 단도직입적으로 수도권 내 개원을 요구했을 때 이현정은 눈꺼풀이 떨릴 만큼 강렬한 짜릿함을 느꼈다. 원하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건강하고 이상적인가. 이현정은 욕망을 감추지 않는 이들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동시에 경멸감도 느꼈지만. 그건 동류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오래전부터 이해했다. 한 꺼풀 벗겨내면 결국 거기에 있는 건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 한 꺼풀이 더럽게 비싸서 문제지만.
이현정이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건 김두리의 마음에 자신의 자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수록 그를 갖고 싶다는 기이한 욕망이었다. 사랑은 아니다. 이름을 붙인다면 차라리 완전한 쟁취에 가까웠다.
이현정은 김두리의 마음과 몸이 어디를 떠다니든 약속된 제자리로 찾아와 주기만 한다면 뭐가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아직은 용서할, 아니 모른 척해줄 용의가 있었다. 신분에 따라 짊어져야 하는 불안과 고통의 수위와 성격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그쯤이야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오기만 해, 길 잃어버리지 말고. 그래야 개원하지. 자기야, 그래야 개원하지.
김두리의 몸에서 나던 냄새. 싸구려 섬유유연제 냄새. 이현정은 의심보다 아직도 그 옅은 냄새를 감지하는 자신의 코에 신물이 났다.
아직 멀었어. 액셀을 밟는 이현정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