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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경 Aug 17. 2023

육영아2

 신호가 끝나는 길에 시장이 보였다. 건강원의 간판도 보였다. 짧은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육영아는 문득 자라를 풀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직도 그런 충동에 시달리는 자신이 충분히 젊다고 느껴졌다. 기분이 나아진 육영아는 흥얼거리며 박스의 뚜껑을 열었다. 자라는 문진처럼 박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얘, 좀 나와 봐. 


   등껍질을 툭툭 건드려도 미동이 없었다. 자라라는 생물이 원체 겁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면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라에 눈을 팔고 있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육영아는 다급히 액셀을 밟았다. 그 바람에 박스가 엎어졌고, 툭 하고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육영아는 초조한 마음으로 공용주차장을 찾아 시장 근처를 선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끝에서 끔찍한 통증이 전해졌다. 육영아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자라가 엄지발가락을 물고 있었다. 몸통에서 빠져나온 자라의 머리는 웬만한 개불만 했다. 뾰족한 코와 옹이 같은 눈. 그 작은 눈과 시선이 뒤엉켰다. 육영아는 발가락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자라를 떼어내느라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사투를 벌였다. 차가 들썩일 정도였다.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도망치듯 차에서 내리자 딸려 나온 자라가 그제야 발가락을 뱉어냈다. 육영아는 자라가 육지에서도 그렇게 빠른 생물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자라는 네 발로 땅을 밀며 접으며 가르며 달렸고 빠르게 육영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라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육영아는 쪼그리고 앉아 발을 감싸 쥐며 흐느꼈다. 깨진 발톱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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