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규
양어장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자박자박 물장구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오정규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새벽잠에서 깨는 시간이 좋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양어장 근방 2km 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버려진 농장과 지붕이 날아간 헛간, 이름도 없는 실개천이 전부였다.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이는 자라를 사러 오는 업자들뿐이었다. 오정규는 값을 흥정하지 않는 업자들에게만 자라를 팔았다. kg당 오만 원. 트럭째 사가도 한 푼 깎아주지 않았다. 덤도 없었다. kg당 딱 오만 원을 받았다. 업자들은 지독하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거래를 끊지 못했다. 오정규의 자라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른 양식장의 자라와 비교해보면 누구나 한눈에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양어장을 인수하기 전까지 오정규는 자동차 휠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오래 일했다. 일은 할 만했고 보람도 있었지만, 사람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소리 내어 웃고, 사람의 눈에서 기대를 읽고 읽히는 게 점차 힘들다고 여겨졌다. 모아둔 돈을 헤아리며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할 무렵 오정규는 사촌으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았다. 여덟 살 위의 그와는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사이였다. 사촌은 미국지사로 발령 난 아들을 따라 이주를 가게 되었으니 가기 전에 밥이나 먹자며 날을 잡았다.
사촌은 벌써 미국물을 먹은 사람처럼 오정규를 보자마자 헬로, 하고 혀를 꼬았다. 두 사람은 횟집에서 전복이 들어간 미역국을 먹었다.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사촌은 술잔을 빠르게 비우며 미국 생활에 대한 기대와 염려를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이라도 씹은 사람처럼 인상을 구기더니 운영하던 양어장을 정리해야 하는데 팔기도 맡기기도 어려워 대단히 골치를 앓고 있다고 했다. 사촌은 혹시 주변에 맡아줄 만한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일은 좀 힘들어. 손도 많이 가고. 근데 할 만해. 돈도 되고, 자라 새끼들도 귀엽고.
오정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가 해봐도 될까요, 했다. 사촌은 놀란 듯 잠시 눈썹을 치켜떴다가 자라를 먹어봤느냐고 물었다. 오정규는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도 먹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양어장을 하려면 자라를 꼭 먹어야 됩니까?
사촌은 오정규의 어깨를 때리며 껄껄 웃다가 사레가 들려 피를 토할 것 같은 기침을 했다.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사촌이 말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말투가 어째 그때랑 똑같냐. 하고 싶지 않습니다! 먹고 싶지 않습니다! 너 군 생활 어디서 했었지?
GOP요.
사촌이 알만하다는 듯이 끄덕였다.
뭐어, 잘해봐. 너라면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사촌을 따라간 양어장은 허허벌판 사이에 겁 많은 동물의 등갑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다. 자라의 숨이 기포가 되어 터지는 소리와 절벅거림, 사촌과 오정규의 발소리만이 그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리였다. 사촌이 흐뭇한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오정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정규는 비로소 있어야 할 곳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양어장은 이미 완벽한 생육 환경을 갖춘 하나의 생태계였다. 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자신의 무지밖에 없다는 사실은 오정규에게 긴장감과 고양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오정규는 사촌이 모은 자료들과 일지를 보며 밤낮없이 공부에 매달렸다. 생물을, 그것도 대량으로 키우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안 가는 일이 없었다. 어떤 앎은 삶 그 자체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걸 오정규는 자라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작업복은 언제나 땀과 비린내에 절어있었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할 때면 오정규는 이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노을이 질 무렵이면 수면 위에 고여있는 황금빛 햇살과 자라가 햇살을 문지르며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자신이 얼마나 사람과 도시를 떠나고 싶어 했는지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양어장에 향어를 풀자 손바닥만한 자라들이 먹잇감을 향해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격렬한 첨벙거림이 한동안 이어졌다. 토종자라는 순한 외모와 달리 포악한 성정과 강인한 턱힘을 지닌 스내퍼였다. 재빠른 소형어부터 사나운 육식어종까지 자라 앞에선 한낱 간식거리에 불과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잔혹한 습성과 끈질긴 생명력. 본래는 겁이 많아 천적이 나타나면 물속으로 숨어버리곤 한다지만 천적이 없는 양어장에서 오정규의 자라들은 한계를 모르는 사냥꾼으로 자라났다. 오정규는 누구에게든 자라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생기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녀석들 굉장히 끈질겨요. 생명력 말입니다. 1, 2년쯤은 아무것도 안 먹고도 버텨요. 빙하기에서도 살아남은 녀석들이거든요. 그대로 자라게 두면 100년도 산답니다. 사람들이 뭐에 좋다, 뭐에 좋다, 하면서 자꾸 잡아먹어서 그렇지 자라는 사실 자라는 걸 제일 잘하는 놈들이에요.
그건 자라의 원초적인 생명력에 대한 놀라움으로부터 비롯된 말이었으나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등갑류는 원래 다 그렇잖아요, 하는 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100년이나요, 하기도 했지만 놀라움은 곧 보신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와 달리 보양식이라는 인식이 큰 탓에 먹히는 것 외에 다른 결말을 생각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자라는 그냥 자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