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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경 Aug 17. 2023

육영아1

  육영아


   육영아는 딸이 가져온 자라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토록 큰 자라는, 아니 생물 자라는 생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네 다리와 눈,코,입이 달려있는 걸 보니 붕어랑은 달리 껄끄러웠다. 진짜 동물이잖아. 괜히 살아있는 걸 봤다고 생각했고, 무턱대고 이런 걸 넙죽 받아온 딸이 낯설었다. 

   저 애는 내가 낳았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아니, 저 애가 나를 모르는 거겠지. 

   육영아는 무지를 자처하는 딸의 무신경함이 때론 야속하기도 때론 편하기도 했다. 가족이라도 적당히 덮어놓고 모른 채 살아야 원만하게 아껴줄 수 있는 법이었다. 

   이걸 어디서 받았다고?

   병원에서. 교수가 보호자한테 받은 걸 줬다나 봐.

   김 서방 어지간히 미움 사는 거 아니니? 이렇게 번거로운걸. 

   이현정은 현관에서 더 들어오지도 않고 그럼 뭐, 다시 갖다줘? 하고 물었다. 육영아는 손사래를 쳤다. 

   거기 그냥 놔둬. 너희 할머니나 고아 드리게.

   번거롭긴 해도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시판 즙이나 한약보다야 낫겠지 싶었다. 마침 사무실에 나가려던 참이었고, 오며 가며 건강원을 하나쯤 본 것도 같았다.      


   육영아는 자라를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조수석에 아이스박스를 고정시킨 뒤 시동을 걸었다. 전조등이 켜지며 맞은편을 비췄을 때, 육영아는 갑자기 나타난 실루엣에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여자였다. 소송을 건 여자. 여자는 잊을만하면 나타나 유령처럼 육영아의 주변을 서성이곤 했다. 주로 사무실 주변에서 작은 피켓을 들고 몇 시간씩 서 있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사적인 영역까지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육영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빠르게 여자의 행색을 살폈다. 여태 피켓에 쓰인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쳐 두 손을 살폈지만 하필 오늘은 빈손이었다. 아니, 빈손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여자가 두 손을 후드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거기서 무엇을 꺼내 든다고 해도 육영아는 겁먹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육영아는 경고의 뜻으로 클랙슨을 길게 눌렀다.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거기 일부러 세워둔 허수아비 같았다.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사무실에서부터 미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뒤늦게 소름이 돋았다. 외부인이 이렇게 쉽게 들어오다니. 관리사무실에 따져 물어 마땅했다. 입주민이 외부인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지나치게 요구해도 좋을 만큼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다달이 관리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육영아는 끈질기게 마주쳐 오는 시선을 무시하며 여자를 지나쳐 갔다. 


   소송이 들어온 건 8개월 전쯤이었다.

   벌금과 합의금을 배상하는 것으로 변호사가 알아서 처리한 일이었다. 육영아는 재판 동안 여자를 딱 한 번 봤다. 작고 시들한 여자였다. 돈이 시급했는지 합의는 원만했으나 여자는 육영아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잡음이 나오기 시작한 브랜드를 계속 안고 갈 순 없는 노릇이어서 정리를 결행하기로 한 이상 이쪽도 손해가 막심했다. 배상은 그만하면 충분했다. 새로운 프랜차이즈 아이템을 기획하고 브랜딩을 준비하는 동안, 육영아의 머릿속에서 소송이라는 두 글자와 여자는 금세 잊혔다. 


   론칭한 브랜드는 초반부터 성과가 좋았다. 하루에도 수십 건 입점 문의가 쏟아졌다. 예상된 일이었다. 육영아에겐 시장을 읽는 눈이 있었다. 남편에겐 없는 눈이었다. 육영아는 성공은 절대 정직의 보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남편을 통해 배웠다. 성공은 정직한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 기회라는 이름을 빌려 쟁취하는 거였다. 남편은 망할 때까지 그걸 몰랐다.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자신의 몫에 순응했다. 육영아는 망해가는 남편의 사업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몫에 순응한다는 것은 교묘한 방식의 자기 조롱이 아닐까 하고. 남편은 잘살고 싶다고 했고 육영아는 한국에서 잘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신이 아는 의미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지 반문해보아야 했다. 육영아도 다만 잘살아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남편과 정확히 반대로 행동했다. 


   ‘대박 아이템’, ‘매출 고공 행진’, ‘입점 문의 마감’과 같은 카피들은 언제나 잘 먹혔다. 한 번도 사업을 해본 적 없는, 은퇴자금을 싸매고 다니는 욕심 많은 쫄보들이 제일 상대하기 쉬웠다. 그들을 혹하게 하는 건 기존 매장들의 실매출이었다. 소형 매장에서 월 1억 매출이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것보다 실매출 영수증을 보여주는 게 훨씬 잘 먹혔다. 그러니까, 매출을 살짝 뻥튀기하는 건 마케팅 요소인 셈이었다. 1억짜리 영수증을 믿고 대박 신화의 꿈을 품은 신규 가맹점이 줄줄이 오픈했다. 점주들은 오픈빨로 몇 개월 단꿈에 젖어있다가 천천히 쇠락해갔다. 비슷한 가게들이 생겨나면 그때부터 본 싸움이었으나 애초에 본사는 간판갈이 하느라 타이틀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 3년 어르고 달래다가 브랜드 단물이 빠질 즈음 새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발을 빼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공식은 언제나 먹혔다.


   재판 이후로 잠잠했던 여자가 나타난 것은 두 달 전 새 브랜드를 론칭한 무렵이었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창업박람회며 팝업 컨설팅 행사마다 다 따라붙었다. 행사가 없을 땐 사무실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육영아는 여자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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