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엽편 1 02화

소시지 사용 설명서

by 빈자루

빨간 줄이 위를 향하게 하여 왼쪽 손바닥 위에 올려놓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머리 부분을 살짝 쥐고, 오른 손으로 빨간 줄의 느슨한 부분을 잡아당깁니다. 줄이 뜯어져 나가며 비닐 가운데가 벌어지면, 내용물을 꼬집듯이 밀어줍니다. 삐져나온 내용물을 끝부분부터 먹습니다.


쌀칵. 담배에 불을 한 번 더 붙였다. 입대가 삼일 후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끝, 아들은 아파트 출입문으로 들어서기 전, 쓰레기수거함 옆에 섰다. 후.

무슨 느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들 가는 건데 뭐. 금방 나오겠지. 되려, 간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술 약속으로 조금은 흥분된 상태였다.

후. 담배 연기가 밤 하늘 아래로 흩어졌다. 날이 찼다.

킁킁. 니트의 목 부분을 당겨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찌개와 담배 냄새가 골고루 섞여 코로 들어왔다. 잔소리 듣기 싫은데...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집 베란다의 창이 훤했다. 엄마가 자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센서 등도 켜지지 않았다. 한 손으로 가장자리를 밀며 현관문을 천천히 열었다. 거실은 환했고 TV에선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가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새끔발로 문간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굴이 불콰했다.

엄마는 담배 냄새가 나면 잔소리를 했다. 술 냄새가 나는 것도 싫어했다. 어릴 적 엄마를 데리고 살던 큰외삼촌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데, 그건 아들 기억에 없었다. 단지 오래전, 외삼촌이 돌아가시던 날 엄마의 광대가 붉게 물들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얼굴을 벅벅 문지르고 입을 헹군 뒤 아들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엄마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왜 안 자?”

멀찍이 앉으며 아들이 물었다.

“잠이 올라는 데 깼어.”

시계가 새볔 두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구 만나고 와?”

“걍 얘들...”

아들은 핸드폰으로 잘 들어갔냐고 친구들에게 물었다. 휴가 나오면 보자는 친구들의 말에 하나하나 정성껏답을 했다. 답장이 더는 오지 않았다.

“낼은 뭐 하니?”

“몰라. 아직.”

더는 말이 없었다. TV 속 가수와 개그맨들이 작은 소리로 웃고 있었다. 엄마는 테가 기운 안경을 코에 걸치고 입을 작게 뗀 채 화면을 응시했다. 쌍꺼풀 없이 처진 눈꼬리가 붉었다.

“왜 안 자?”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늦은 시간 잠에 들지 못했다. 나이 때문이라고도 했고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고도 했는데, 아들이 고3 무렵 자정을 넘기며 귀가할 때부터였던 것도 같았고, 아들이 대학을 간 이후로는 술자리가 길어지면서부터였던 것도 같았다. 엄마는 아들보다 늦게 잠이 들었고, 일찍 일어났다. 습관 때문이라고 아들은 생각했다.

“자야지...”

안경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눈가를 훔치며 엄마가 말했다.

“언제 가?”

“아침엔 떠야지.”

엄마가 멀리 앉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손은 핸드폰 위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도 핸드폰을 찾았다. 액정 위 글씨가 뿌앴다. 폰을 멀리하고 턱을 추켜올렸다. 다초점 렌즈의 돋보기에 어른거리는 글씨가 작았다. 엄마가 손등으로 안경테를 밀어 올렸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니?”

손가락에 힘을 주어 핸드폰을 꾹꾹 누르던 엄마가 물었다.

“잠깐만.”

아들이 핸드폰을 빠르게 올리며 말했다. 아들은 오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SNS에 정리해 올려야 했다. 아들이 물었다.

“뭔데?”

“이거.”

엄마가 핸드폰 화면을 아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화면 속에는 손가락 끝에 반쯤 가려진 거실이 찍혀 있었다. 찍힌 TV 화면이 비뚤었다.

아들이 옷을 당겨 냄새를 맡고 엄마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곤,

“이거 누르고, 이거. 여기가 렌즈니까 닿지 말고.”

“어디?”

손톱 끝으로 화면을 건드리며 엄마가 물었다.

“아니, 손끝으로 눌러야지. 그러면 인식을 못 하잖아.”

찰칵. 엄마가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핸드폰을 아들 쪽으로 향했다. 찰칵. 찰칵.

“봐. 여기서 여기로 가면 찍힌 게 나와.”

“어디?”

엄마의 굽은 손가락이 떨렸다.

“여기.”

아들이 앨범 아이콘을 누르며 말했다.

“다시 한번 해봐.”

찰칵. 찰칵. 엄마가 아들 사진을 몇 번 더 찍었다. 그리고 그가 일러준 데로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앨범에는 아들과 거실 사진 외에도 주머니 속 사진, 위아래가 바뀐 사진이 몇 장 더 있었다. 엄마는 화면을 넘기며 사진을 한참 들여봤다.

“나 먼저 잘게.”

아들이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늦게까지 거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며칠 후, 훈련소의 딱딱한 침상에 걸터앉은 아들에게 편지 봉투와 내용물 없는 종이 한 장 훈련관 통해 전달었다.

...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구먼...

누구에게 인지 모를 혼잣말과 함께 엄마의 편지 뒷면에는 삐뚤빼뚤한 소시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번호를 매긴 삽화 마지막에는 소시지 껍질이 바나나처럼 벗겨져 있었다. 편지의 끝엔 이런 말도 적혀있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더 찍어 놓는 건데...


화면을 위로하고 왼손으로 뒤를 감싸 쥡니다. 쥔 손의 검지 끝이 동그란 렌즈를 가리지 않도록 합니다. 오른 손가락으로 하얀 점이 아홉 개 찍힌 회색 네모를 누릅니다. 하얀 사진기 모양의 빨간 네모를 찾습니다. 찍고 싶은 대상이 화면에 나오게 한 후, 가운데 밑의 하얀 동그라미를 누릅니다. 찍힌 사진은 하얀 꽃이 그려진 빨간 네모를 눌러 확인합니다.


나의 시간은 빠르게 가고, 엄마의 시간은 멈추어 있고. 엄마에게 핸드폰 사용법을 설명하는 나는.

나의 글이 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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