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엽편 1 03화

파김치

by 빈자루

*

어릴 적, 동생은 파김치가 맛있다고 했다. 네 식구가 동그란 밥상에 모여 밥을 먹을 때면 동생은 그 빨갛고 징그러운 녹색 괴물을 잘도 받아 먹었다. 오물오물. 맞은편에 앉은 나는 앞에 놓인 밥알 더미가 벌레처럼 보였다. 엄마는 동생을 칭찬하며 숟가락 위에 잘게 썰린 파김치를 올려놓았다. 나는 눈치를 보며 물에 씻은 김치를 슬쩍 밥상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요, 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 밥공기를 물끄러미 내려보더니 벌레가 어디 있느냐고 되물으셨다. 꼬물꼬물. 끈적한 벌레들이 밥그릇 위에서 꿈틀대는 것 같았다. 엄마는 화를 내며 밥그릇을 빼앗았다. 밥상을 떠나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밥상머리에서 눈물만 훔쳤다. 동생은 눈을 내리깔고 밥그릇을 움켜쥔 채 입술을 잘도 오물거렸다.

나는 그때 학교에 가는 게 무서웠었다. 밥상에 앉아 밥알을 세며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새로 만난 친구들과 교실, 선생님이 무서웠다. 친구들이 나를 놀릴 것 같았고, 선생님이 나를 혼낼 것 같았다. 전학 온 지 며칠 째. 툭하면 옆 반으로 잘못 들어가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 짝을 후려치며 밥을 먹으라고만 볶아댔다.

“엄마. 더 줘.”

동생이 숟가락을 내밀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동생의 숟가락에 붉은 괴물 김치를 크게 올려놓았다. 동생의 입이 오물거렸다. 나는 동생이 미웠다.


동생은 내가 하는 짓마다 따라 했었다. 내가 앉으면 앉고, 내가 달리면 달려왔다. 엄마는 형이 하는 대로 동생이 따라 하니, 형이 잘해야 한다고 했다. 간신히 맞춘 퍼즐 조각을 동생이 흩트리면, 형이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순서대로 정리한 전집을 동생이 엎어버려도, 형이 참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달리고 있을 때, 동생이 엎어지기를 바랐다. 동생이 넘어져 울고 있으면, 나는 그걸 못 들은 채 하고 냅다 달렸다. 멀리서도 동생의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마지못해 동생을 일으켜 세워줬다. 동생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나는 동생이 싫었다.


어느 날, 비탈길을 달리던 동생의 자전거가 하늘을 날았다. 나를 따라 비탈길을 내려오던 동생이 네 발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달려나갔던 거다. 동생은 잠시 하늘을 붕, 날았고 이내 수풀에 처박혔다. 우는 동생을 들춰 업고 오르막 길을 내달렸다. 어디가 다쳤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달렸다. 괜찮아, 괜찮아, 형아가 데려다줄게. 동생이 등 뒤에서 악을 쓰며 울었다.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엄마가 놀라며 동생을 받았다. 까진 부위를 한참 만지고 팔다리를 주물러 보더니, 엄마가 큰일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엄마가 동생의 상처에 빨간 약을 발라 주었다.

“그래도 형이 있으니까 든든하네.”

엄마가 말했다.



*

“언제 만날래?”

동생이었다. 동생은 커서 작은 공장에 취업을 했다. 나는 한가하니 편한 시간을 정해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딸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동생이 말한 날짜에 맞춰 식당을 예약했다. 동생은 딸이 좋아하는 놀이를 잘 만들었고, 딸은 그런 삼촌을 잘 따랐다.


“아빠. 삼촌 언제 와요?”

동생이 늦는다고 했다. 잔업이 끝나는 데로 바로 출발하겠다고도 했다. 동생이 오길 기다리며 딸아이와 박물관 주변을 산책했다. 잡은 아이의 손이 내 손 안에서 꼬물거렸다. 햇살이 더해져 너른 공터에는 가벼운 옷을 입고 뛰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딸 애가 그 뒤를 따라 뛰려다 멈추고 돌아와 내 손을 잡았다. 동생이 멀리서 오는 게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손가락이 굵어졌고 손톱 밑이 검었다. 벌어진 어깨를 열어 동생이 딸아이를 안아 주었다. 공장에 사람이 그만두면서 최근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딸아이는 동생의 손을 잡고 나는 그 뒤를 선선히 따랐다. 조무래기들이 여전히 술래잡기를 하며 서로의 뒤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자, 지금부턴 하얀색만 밟는 거예요.”

별것도 아닌 걸로도 동생은 딸과 즐겁게 놀아줬다. 주차 정산을 하러 내가 사라졌을 때도 동생은 아빠 찾는 놀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딸과 놀이를 했다. 뒤늦게 나타난 내가 둘을 찾을 때도, 동생은 주차장 기둥 뒤에 숨어 탐정 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깡충깡충. 삼촌의 손을 잡은 딸애가 흰 블록을 밟으며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늦은 식사를 하러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메뉴판에 아이가 먹을 음식을 고민하다가 돼지고기 수육을 시켰다. 포들한 수육과 파김치가 함께 나왔다.


“이것도 먹어야지.”

씻긴 파김치를 딸애의 그릇 안에 넣어주자 아이가 먹기 싫다며 투정을 부렸다. 동생은 싫은 걸 억지로 먹이지 말라며 파김치를 빼고 수육만을 아이의 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아이는 고기가 맛있는지 입을 오물거리며 삼촌에게 더 달라고 숟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원에선 여전히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가로수 지지대에 기댄 아이, 비둘기 떼를 쫓는 아이, 계단 난간에 매달린 아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한 꼬마가 잘 뻗어지지 않는 발을 떼며 앞서 달리는 형을 쫓고 있었다. 형은 뒤를 힐끔거리며 동생이 어디쯤 오나 살피고 있었다. 꼬마의 무릎이 굽혀지며 철푸덕, 꼬마가 땅에 엎어졌다. 형이 달리던 걸 멈추고 동생에게 다가간다. 넋 놓고 그 애들을 보고 있던 나도,


나도 모르게 손을 뻗으며 아이들을 향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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