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개발했던 유기묘 입양 플랫폼과 반려묘 용품 커머스는 모두 이렇다 할 가시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말하자면 실패작이었다. 그 후 정말 어렵게, 겨우 겨우 붙은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서'냥옥집'이라는아이디어를도출했고, 여러 번의 사고 실험과 가설 검증 끝에 착수한 프로젝트가캐스트하우스(CASTHOUSE)였다.
하지만 오랜 숙성 과정을 통해 탄생한 아이디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는 지원하는 것마다 서류도 통과하지 못하고 광탈했다. 민간 VC가 하는 배치 프로그램에도 문을 두드렸지만 또다시 광탈, 광탈 또 광탈.
그래서 어떻게든 캐스트하우스를 시작해보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시작했던 게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펀딩을 통해 감사하게도 500만 원 정도가 모였지만, 작화료와 가구 구입비를 빼고 나니 결국엔 적자였다. 게다가 텀블벅이 끝난 후,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하고 블로그에 글도 썼지만 노출 자체가 잘 안 되다 보니 신규 예약이 없었고, 돈이 없어 밥을 굶다 보니 살이 쭉쭉 빠졌었다.
그런 와중에 유튜버와 네이버 파워 블로거가 캐스트하우스에 방문해보고 싶다는 연락을 주었고, 두 귀인에게 너무나 큰 감사함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반복되는 좌절로 인해 묵직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결국엔 잘 될 거다라는 희망보다, 기대했다가 또다시 실망할 나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어차피 잘 안될거야'라며. 기대하지 않을 결심을 했다.
이상한 꿈
인플루언서의 방문을 며칠 앞둔 시점에, 이상한 꿈을 꿨다. 전후 스토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내가 아버지의 시체를 만지는 꿈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생생할 정도로 아버지 얼굴에는 이상한 하얀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온몸이 푸른빛이었고, 피부는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있었다.
너무나 생생한 꿈에 자고 일어난 후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사업도 제대로 안 풀리고 있는데, 이런 이상한 꿈까지 꾸다니. 정말 그야말로 나는 안되는구나 싶었다. 며칠 동안 이 꿈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가족들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왠지 그런 입에 담지도 못할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흉몽의 정체
인스타그램 릴스와 유튜브 동영상이 업로드된 후, 예상대로 곧바로 예약이 늘어나진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를 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잘했다', 안도하며 한편으론 '그럼 그렇지'라고 자조했다.
그렇게 영상이 업로드된 후 며칠이 지났을까? 에어비앤비로 새로운 예약이 하나 불쑥 들어오더니 갑자기, 2건. 4건. 하루에 5건, 6건씩 새로운 예약이 잡히기 시작했다. 11월 예약이 텅텅 비어있었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풀부킹이 됐고, 11월이 꽉 차니까 그 수요가 12월, 1월로 넘어갔다.
릴스와 유튜브를 통해 에어비앤비의 캐스트하우스 조회수와 예약 건수가 늘어나면서 에어비앤비에서도 상위 노출이 되고, 그래서 또 예약이 늘었다. 동시에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소소하게 올리던 콘텐츠들이 릴스와 유튜브로 유입된 유저들에게 노출되면서 팔로워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타겟 고객의 반응', '선순환의 사이클'이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서 많은 랜선 집사들에게 캐스트하우스를 알릴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 차례씩 스마트폰으로 에어비앤비 예약 알람이 울렸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퇴사 후 2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세상이 나의 미약한 발버둥에 비로소 흘끗, 눈길을 주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유튜브 영상 덕분에 지금도 꾸준히 캐스트하우스를 찾아주는 랜선 집사님들이 많다.
불현듯, 그 이상하고 생생했던 꿈이 생각났다. 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던 그 꿈. 검색해 보니, 이럴 수가. '소원성취'를 상징하는 엄청난 길몽이란다. 그 시기에 그런 꿈을 꾼 건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참, 묘했다.
작은 성공 그다음엔
이 글을 쓰는 지금은 MVP(Minimum Viable Product)였던 1개의 캐스트하우스를 2개로 늘려서 두 개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1호점 때와 마찬가지로 2호점 역시 초반 홍보에 애를 먹고 있다. 첫 오픈 때는 텀블벅 펀딩으로 기존 1호점 집사님들이 2호점을 찾아주셨지만 2개를 운영하는 만큼, 2배의 수요를 검증해야 한다.
캐스트하우스 2호점. 1호점과 마주보고 있는 집. 천안 묘정 쉼터 소속 알밤이와 호빵이가 살고 있다.
2023년 8월에 캐스트하우스를 시작한 후 1년 넘게, 이틀 이상 쉬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지금, 몸과 마음이 모두 번아웃을 넘어선 상태다. 매일 4시간씩 출퇴근을 하면서, 점심도 굶어가며 11시부터 3시 반까지 땀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면서 청소, 빨래를 하고 입실하는 손님들께 대면으로 반려 교육까지 해드리고 나면 완전히 넉다운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쏟아지는 피로감을 간신히 부여잡고 꾸역꾸역 인스타그램을 올리고 릴스를 올리고 블로그 글을 쓰고 있다.
동시에 틈틈이 VC에 콜드 메일로 IR 자료도 보내고 있다. 캐스트하우스를 통해서 동물을 구매와 거래의 대상으로 보는 오래된 상식을- 동물을 물건처럼 거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됐다 - 동물을 배우고 이해하고 맞춰가야 할 대상으로 보는 방식으로 바꾸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캐스트하우스와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콜드 메일의 특성상 대부분은 답이 없거나 답이 있는 경우, 보기 좋게 또 계속 거절만 당하고 있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이 브런치의 결말이 눈부신 성공이 아니라 겨우 한 고개를 넘어서 또다시 꾸역꾸역 간신히 해내고 있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나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빛이 있다는 자연의 순리를 잊지 않기를. 노력이 배신을 할지라도 미련이 남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그리고 힘 내기를.
20편의 브런치 스토리를 기록하면서 함께 완성해 온 캐스트하우스는 아래 링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캐스트하우스는 고양이와 함께 숙박하며 집사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반려인 생활 경험 프로그램과 함께 맞춤형 반려인 교육이 제공됩니다.
현재 천안 묘정 쉼터 소속의 고양이 차돌이와 우유(1호점), 호빵이와 알밤이(2호점)가 평생 집사님을 캐스팅하기 위해 캐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숙박 후 평생 묘연을 느낀다면, 입양 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